정현규 ETRI 5G기가서비스 연구부문장
정현규 ETRI 5G기가서비스 연구부문장
정현규 ETRI 5G기가서비스 연구부문장


한 각을 뜰 때마다 큰 절을 올렸다고 전해지는 해인사의 팔만대장경. 공학자인 내게 목각 대장경을 보관한 장경판전의 풍경은 그야말로 어수룩하기 그지없었다. 불상의 구조와 위치 선정의 과학성에 혀를 내두르게 하는 석굴암의 치밀함에 비하면 부는 바람에 목각판이 설렁설렁 드러나 있고, 대장경 목판의 보관함이 지면으로부터 고작 떠 있는 정도의 '성의'만 관찰될 뿐이다. 팔만대장경에서는 특별한 천년의 신비감이 보이지 않는다.

필자의 식견과 달리, 해인사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대장경은 극도의 과학적 비밀이 숨겨져 있다 한다. 바로, 지난 800년간 목판이 썩거나 뒤틀림이 없었다는 점이다. 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법보전 벽면에 위치한 서로 다른 크기의 창과 통풍의 원리가 비밀이다. 법보전은 산중임에도 불구, 목판이 놓인 곳은 바람이 잘 통해 거미 한 마리 찾아볼 수 없도록 설계돼 있다. 이는 현대 과학에서도 정확한 원리를 알기 어렵다는 것이 해인사측의 설명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이 제작 시기다. 고려시대 대장경 축조 당시는 태평성대가 아닌 원(元)과의 전쟁 중에 만들어졌다. 환난 중임에도 불구, 무기가 아닌 목판에 불경을 새기며 온 국민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노력한 것이다. 즉 당장은 힘들고 적의 침입으로 혼란스러워도 미래에 대한 안녕 기원과 비전에 투자하는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이렇듯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재인 대장경에는 뼈를 깎는 노력과 혼, 장기적 안목과 내재적 가치가 스며들어 있다.

필자는 21세기에 살며 최첨단 이동통신 기술의 선도에 노력하고 있지만 조상들의 과학적 지혜를 반추해 보면 배울 점이 많다. 해인사에서 온고지신(溫故知新)을 생각하며 다가올 이동통신의 새로운 기술개발을 생각해 본다. 명확한 사실은 향후 공인될 가능성이 있는 핵심 기술에 대한 장인정신과 이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투자와 기다림이다. 질그릇이 아닌 명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대의 현재성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어느 정도 불확실성의 미래에 몸을 던지는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2020년 5G로 일컬어지는 5세대 이동통신의 표준이 완료되지만 4차 산업혁명의 파고에 휩쓸리고 있는 지금 사업자를 포함한 이동통신 생태계는 가시적인 '새로운 시장' 출현을 앞당기기 위해 올림픽과 월드컵 행사를 기점으로 상용 서비스 현실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불과 3년 후에 벌어질 5G 세상에 관한 기술은 이미 정형화되고 있고 큰 틀 속에서 상용화를 위한 준비에 몰두해 있다. 따라서 지금은 10년 후의 세상에 꼭 필요한 핵심 기술을 준비해야 할 때다. 스마트폰에서 수많은 앱 서비스가 가능해 지금같이 다양한 서비스를 즐기고 풍요로운 관련 산업 생태계가 발전하는 단초의 제공은 10년 전 애플에서 선보인 개방형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도약하기 위한 핵심기술은 기반 기술이며, 관련 생태계는 기반기술 중심으로 파생된다. 따라서 기반기술을 꿈꾸는 일이 지금 절실히 필요하며, 5G를 넘어서는 B5G(Beyond 5G)의 세상을 꿈꾸고 실현시키는 계획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B5G 세상은 사용자 이동성을 넘어 네트워크 이동성이 강조되고, 이에 파생되는 무궁무진한 서비스와 생태계가 예상된다. 전통적인 이동통신의 범주는 이미 수직 산업계와의 5G 융합 서비스로서 그 경계가 무너지고 있으며, 새로운 서비스 수요에 대한 준비는 철저한 핵심 기반기술의 확보가 중요하다. 환난의 시절, 위기를 기회로 만든 선조의 지혜를 살리는 길은 조급증을 벗어던지고 철저한 계획에 기초한 기술에 방점을 마련하는 깊은 고민을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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