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망중립 폐지와 정반대 기조
세계 흐름 국내 영향 미미할듯
일각 "5G 투자 주체 통신사 뿐
트래픽 증가땐 소비자 부담
"망중립성 논의 아직 시작단계
정책변화 벤치마킹 상황아니다"

■ 5G시대, 흔들리는 망중립성
(하) 새정부 망중립성 과제는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망 중립성'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앞으로 새 정부가 펼칠 ICT 정책에서 망 중립성은 보다 강화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진다. 미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망 중립성 폐지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미국과는 정반대 상황인 셈이다.

망 중립성은 통신사, 케이블TV 등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가 인터넷으로 전송되는 콘텐츠를 차별하거나 차단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그동안 세계 각국에서는 망 중립성을 두고 통신업계와 인터넷·콘텐츠 업계 간 신경전이 첨예하게 전개됐다. 통신업계는 콘텐츠 사업자들이 막대한 수익을 얻으면서도 네트워크에는 한 푼도 투자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인터넷 업계는 혁신서비스 성장을 위해서는 망 중립성이 필수라고 주장한다.

일단 당장 미국에서 망 중립성 법안이 폐지된다 해도, 국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낮다. 다만 미국의 ICT 정책은 세계 각국의 ICT 정책의 '스탠더드'나 다름없이 작용해온 만큼,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망 중립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상태다. 국내에선 2011년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이 처음 만들어졌으며, 2013년에 통신망의 합리적 트래픽 관리기준을 만들어 시행 중이다. 여기에 지난 3월 방송통신위원회가 망·플랫폼 중립성을 담은 고시 제정안을 공개, 오는 7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그동안에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가이드라인 수준이었다면, 이를 법제화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5G 시대에 접어들며 망 중립성이 산업 전반에 미칠 영향을 다각도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다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국내에서도 5G 시대를 맞아 새롭게 망 중립성 논의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과 오히려 망 중립성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엇갈린다. 또 국내에서도 통신사와 손잡은 특정 콘텐츠 비용을 사업자가 부담해 소비자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제로 레이팅' 서비스가 속속 나오기 시작하는 만큼, 이를 활성화할 것인지 여부를 두고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김홍식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차세대 망인 5G에 대한 투자 주체가 통신사밖에 없다"며 "현재의 환경에서는 트래픽이 증가하면 소비자, 또는 트래픽 유발 기업이 요금을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5G가 도입되면 데이터 속도 처리 향상으로 자연스럽게 시간당 트래픽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여기에 가상·증강현실(VR·AR) 등 신개념 콘텐츠의 등장, 자율주행차 등으로 인한 이동통신 트래픽 폭증이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이병태 카이스트(KAIST) 교수는 "망 중립성은 기업체 간 이해가 상충하는 이슈로, 어느 한쪽이 옳다고 보긴 어렵다"면서도 "일반적으로 진보 정부는 망을 사회적 인프라로 보는 반면, 시장 중시 정부는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라 망 대가를 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다만 망 중립성 강화와 통신비 인하를 동시에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통신비를 낮추면 통신사 수익성이 떨어지니까 망 투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동영상, 초고화질(UHD), 사물인터넷(IoT), VR·AR 등 5G로 갈수록 데이터 수요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나는데, 망 투자 부담을 통신업체에만 떠넘기긴 어렵다"고 주장했다.

반면 망 중립성을 지금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망 중립성 논의가 아직 저급한 상태로 미국의 최근 정책변화를 벤치마킹할 상황이 아니다"며 "이통사의 자사 콘텐츠 제로레이팅 서비스를 규제하거나, 음성서비스 매출 보호를 위해 모바일 인터넷전화(m-VoIP) 서비스를 막았던 것에 대한 규제를 하지 않는 등 미국에서는 극심한 법 위반으로 인정될 것도 규제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제로레이팅 서비스에 대해서는 망 중립성과 별개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성환 아주대 교수는 "제로 레이팅은 비용을 소비자가 아닌 사업자가 부담한다는 요금의 문제이지, 트래픽이나 망 중립성과는 관계가 없다"며 "만약 제로 레이팅으로 인한 거래상 차별이 일어나면 공정거래법이나 전기통신사업법상의 이용자 차별로 규제하면 되지, 망 중립성을 갖다 대는 것은 규제를 쉽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윤희기자 yuni@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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