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평범한 시민의 시대다. 새 정부에 거는 기대야 저마다 다르겠지만, 무너지던 나라를 촛불의 물결로 다시 일으켜 세운 시민, 그러니까 우리 자신에게 거는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높을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섰다고 우리 삶이 하루아침에 바뀔 리는 없다. 지금껏 우리를 둘러싼 숱한 문제들이 풀리지 않았던 이유가 박근혜 정부 탓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가장 시급한 현안 중 일부는 현재의 체계나 정책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어느 혁신가의 말은 새겨볼 만하다. 우리는 더 이상 국가도 시장도 만능일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국가와 시장의 빈자리를 메우려는 흐름이 바로 '사회혁신(Social Innovation)'이다. 오랫동안 국가도 시장도 풀지 못했던 숱한 사회적 난제들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접근으로 풀어보려는 시도를 가리킨다. 새로운 시각으로 문제를 정의하고 집단의 힘으로 창의적 해법을 찾아 나선다. 이 모든 여정을 이끄는 건 어디까지나 시민이다.
유럽집행위원회(EC)는 2010년, '스마트하고, 지속 가능하며 포괄적인 성장'을 목표로 한 '유럽 2020 전략(Europe 2020 Strategy)'을 내놓으면서 바로 이듬해에 'Social Innovation Europe(SIE)'을 창립했다. 유럽 전역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사회혁신 프로젝트들을 안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였는데, 이는 유럽에선 사회혁신이 벌써 범국가적 어젠다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서울시도 2015년 '서울혁신파크'를 세웠다. 사회혁신의 허브로 삼아 한국에도 사회혁신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게 목표다. 지난해부터는 서울시의 여러 도시 문제를 해결할 사회혁신 프로젝트들도 지원해오고 있다. 골목길 주차난을 해결하려는 공유주차 실험(금천구), 무선가전의 배터리를 교체해주는 플랫폼 조성(성동구), 청소년 심리치유 VR(가상현실) 미디어아트 교육(마포구) 등 첫해에 거둔 성과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혁신 생태계'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먼저, 시민 아이디어 발굴에서부터 혁신적 해법 창출과 정책화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국가 또는 지방정부의 지원체계를 갖춰야 한다. 자금 지원만으로는 지속 확산하기 힘들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그럴듯한 정책 모델로 키워내는 일은 마치 거친 다이아몬드 원석을 캐내어 다듬는 일과 같다. 그만큼 여러 분야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도 어렵게 진행된 사회혁신 프로젝트들이 의미 있는 결실을 맺고 새로운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국가와 지방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
다음으로, 시민이 사회문제 해결에 과학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시민과 과학기술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과학기술은 사회혁신에 활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요소다. 앞서 소개한 서울혁신파크의 프로젝트들에도 VR 기술을 비롯해 무선센서와 배터리팩 재생 기술 등이 활용됐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으로 떠들썩한 오늘날에도 평범한 시민이 직접 필요한 기술을 찾아 활용하기란 여전히 어렵다. 그나마 최근 미래창조과학부가 '국민생활연구 포럼'을 개최하는 등 국가 과학기술 정책의 방향 전환을 시도하고 있어 반갑다. 한국의 앞선 과학기술 역량이 사회혁신과 만날 때 사회혁신 생태계도 더 역동적으로 뻗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행정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사회혁신의 길은 시민과 행정이 손을 맞잡고 함께 걸어가야 길이다. 금천구 공유주차 실험의 성공 뒤에는 전국 첫 시민공모 민간인 동장(독산4동)의 적극적 지원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국가와 더불어 지방정부도 지역마다 사회혁신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그것이 시민과 행정이 어우러지는 협치의 시대에 어울리는 행정의 역할이다.
"사회혁신은 사람을 위한 것이자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바로소(Barroso) 전 위원장의 말이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새 정부가 부디 이 말을 기억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