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하던 아버지·연탄배달 어머니 책 읽기 좋아한 꿈 많았던 고학생 '인혁당 사건' 항의하다 수감 강제징집돼 특전사령부 입대 시위전력으로 판사 임용 탈락 노 전 대통령과 인권변호사 활동 참여정부시절 요직 두루 거치며 '친노' 낙인… 정치적 공격받기도 18대 대선 박 전 대통령에 석패 '재수'로 19대 대통령 당선
문재인 대통령은 19대 총선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로 부산 사상구 선거구에 출마했다. 사진은 총선에서 대화광장을 열어 주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모습.
참여정부 시절 고 노무현 전 대통령(오른쪽)과 함께 걷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왼쪽사진). 특전사령부 제1공수 특전여단 군복무 시절의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8대 대선에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로 광화문에서 유세를 펼치고 있는 모습.
문재인 대통령 대학시절 모습. 문 대통령은 재수 끝에 경희대학교 법대에 합격했으며, 유신반대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문재인 캠프 제공
■ 새 대통령 문재인 문재인 대통령 걸어온 길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외침이 국민의 마음에 와 닿았다. 지금까지 그가 보여줬던 한결같은 모습이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믿음에서 출발한 선택이었다.
◇유신반대 운동 벌이던 고학생(苦學生) 문재인, 인권변호사가 되다=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6·25전쟁으로 난리를 치르던 1953년 1월24일 경남 거제에서 태어났다. 함경도 흥남 출신인 그의 아버지는 전쟁 중 월남해 경남 거제에 터를 잡았다. 2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문 대통령의 어린 시절은 고됐다. 장사를 하던 아버지와 연탄배달을 하는 어머니를 도와 생계를 꾸려야 했을 정도로 집안 살림은 팍팍했다. 하지만 가난이 꿈많은 소년의 날개를 꺾지는 못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저서 '운명(2011)'에서 "가능하면 혼자서 해결하는 것, 힘들게 보여도 일단 혼자 힘으로 해결하려고 부딪혀 보는 것, 이런 자세가 자립심과 독립심을 키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가난이 내게 준 선물이다"라고 회상했다.
자립심과 독립심이 뛰어났던 소년은 부산 영도구의 남항초등학교와 경남중·고를 다녔다. 고교 시절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책 읽기를 좋아했던 터라 공부는 곧잘 했다. 서울대 상대에 응시했다 낙방했던 문 대통령은 재수를 거쳐 4년 전액 장학생으로 경희대 법대에 당당히 합격했다.
공부보다 우선해야 할 것이 많았던 혼란한 사회에서 문 대통령은 유신반대 운동에 뛰어들었다. 1974년 유신반대 학내시위를 주동하다 체포돼 구류처분을 받고 풀려났지만 이듬해인 1975년 인혁당 사건 관계자들이 사형을 당한 다음날 이에 항의하는 대규모 학내시위를 주도하다 다시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됐다. 이로 인해 석방과 동시에 학교는 제적을 당했고, 강제징집돼 특전사령부 제1공수 특전여단에 입대했다. 31개월의 군 생활을 마치고 1978년 만기 제대했지만 청년의 앞길은 막막했다. 시위 주동자로 복역한 이력 때문에 복학할 수도 없었고 취업은 더더욱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남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뒤늦게나마 한 번이라도 잘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던 아들은 고시공부를 결심했다. 아버지의 49재를 마친 다음날 전남 해남 대흥사에 들어가 고시공부에 전념했다. 공부를 시작한 이듬해인 1979년 1차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계엄령 위반으로 군사재판에 회부된 문 대통령은 1980년 경찰서 유치장에서 2차 시험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하지만 학생운동 전력은 끝까지 발목을 잡았다. 1982년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했지만 시위 전력은 그를 판사 임용에서 떨어뜨렸다. 문 대통령은 홀어머니를 모시려고 부산으로 돌아와 인권변호사가 됐다.
문 대통령은 대학 시절 만난 부인 김정숙씨와 1981년 결혼해 아들 문준용씨와 딸 문다혜씨 등 1남1녀를 뒀다.
◇노무현을 만난 문재인, 정치인이 되다=문 대통령은 부산에서 운명처럼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났다. 문 대통령은 1982년 당시 노무현 변호사와 합동법률사무소를 차리고 인권변호사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그때의 인연을 바탕으로 문 대통령은 지난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 후보였던 노 전 대통령의 부산선거대책위원회 본부장을 맡았다. 처음으로 정치계에 입문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된 뒤 문 대통령은 민정수석과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대표적인 '친노(친노무현) 인사'로 자리 잡았다. 노 전 대통령 서거 후에는 재단법인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직을 지냈다.
문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정치계에 발을 들인 것은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 지역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부터다. 문 대통령은 같은 해 6월 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선언하고 대권에 도전했다. 새 정치 바람을 일으키며 나타난 정치 신예 안철수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양보를 얻어내고 우여곡절 끝에 후보 단일화를 이뤄냈지만 선거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석패했다.
이후 문 대통령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의 당 대표로 선출돼 10개월가량 대표직을 수행했다. 하지만 재보선 패배, 안철수 전 대표를 주축으로 한 의원의 동반 탈당이 이어지며 위기를 맞기도 했다. '친노 패권주의'를 경계하던 당내 목소리는 '친문 패권주의'라는 굴레를 덧씌워 문 대통령을 향한 비난의 강도를 높이기도 했다.
'문재인 위기론'이 '문재인 대세론'으로 바뀐 것은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의 승리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손혜원, 표창원, 박주민, 양향자, 김병관 등 다양한 분야의 인사뿐만 아니라 박근혜 캠프 출신 원로인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을 영입해 더불어민주당의 외연 확장을 꾀했다. 결과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은 여당인 새누리당보다 많은 123석을 차지하며 원내 제1당으로 올라섰다. 다만 '민주당의 텃밭'이었던 호남에서 국민의당에 참패해 문 대통령 책임론이 불거지기도 했다.
◇'대세'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이 되다='문재인 대세론'은 19대 대선까지 이어졌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조기 대선 정국을 맞은 이후 '문재인 대세론'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했으며, 더불어민주당 내 경선이 실질적인 대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경선 결과 문 대통령은 누적 득표에서 93만6419표로 득표율 57%를 기록, 안희정 경선 후보(35만3631표·득표율 21.5%), 이재명 경선후보(34만7647표·득표율 21.25%), 최성 경선후보(4943표·득표율 0.3%)를 물리치고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됐다.
대선 여론조사에서도 '문재인 대세론'은 무너지지 않았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의 선전으로 대선 중반 여론조사에서는 오차범위 내 접전 양상을 보이며 위기가 오는 듯하기도 했다. 그러나 꾸준히 40% 안팎의 지지율을 얻으며 독주를 멈추지 않았다. 비록 다자 구도 경쟁에서 과반의 지지를 얻은 대통령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의 바람처럼 전국에서 골고루 지지를 받는 대통령이 됐다.
문 대통령은 선거 전 일문일답에서 "신이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면 대통령에 당선돼 적폐청산과 국민통합을 이루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새로운 대한민국을 열 수 있게 해달라 빌겠다"고 말했다. 신의 도움이 아닌 유권자의 선택을 받은 문 대통령이 자신의 바람을 현실로 이뤄내길 국민 모두가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