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정부, 현대상선 이용해 대우조선해양 연명시키려는 것" 선박입찰 기준평가 공개 요청도
유창근 현대상선 대표(왼쪽)와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대표(오른쪽)가 초대형 유조선 신조 발주를 위한 건조계약 의향서(LOI)에 서명을 마치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현대상선 제공
[디지털타임스 양지윤 기자] 대우조선해양이 현대상선에서 최대 10척에 달하는 초대형유조선(VLCC)을 사실상 수주했다. 모회사이자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이 최대 지분을 보유한 현대상선을 앞세워 부실 자회사 살리기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대우조선은 현대상선과 지난 7일 서울 다동 대우조선 사옥에서 VLCC에 대한 건조의향서(LOI)를 체결했다고 9일 밝혔다.
통상 선사는 발주 전 단계로 조선소와 투자의향서를 먼저 체결하고, 이후 큰 상황 변화가 있지 않은 이상 대부분 최종 계약을 한다. 이번 건조의향서에는 5척을 우선 발주하고, 최대 5척을 추가로 발주할 수 있는 옵션을 포함했다. 본계약은 7월 말까지 체결할 예정이다. 계약 금액은 아직 협의 중이다.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VLCC 한 척당 시세는 현재 8000만달러로, 이보다 높은 가격을 책정할 것으로 조선업계는 본다.
대우조선의 선박 수주는 지난해 10월 정부가 발표한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의 하나로 조성한 2조6000억원 규모의 '선박 신조 프로그램'을 현대상선이 활용한 첫 프로젝트다. 현대상선은 VLCC 신조 발주를 위해 지난달 22일 입찰제안서 공고를 냈고,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 '빅3'에서 제안서를 받았다. 하지만 입찰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대우조선이 수주를 따낼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현대상선 측은 "이번 공개 경쟁입찰은 공정한 평가 기준에 따라 진행했다"며 "각 조선소가 제시한 제안사항에 대해 내부 투자심의 절차 기구인 투자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의결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민간기업이 2011년 이후 6년 만에 선박 발주를 재개했지만, 이번 계약을 두고 타당성 논란이 일고 있다. 대우조선의 회생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국민 혈세를 투입한 현대상선이 구원투수로 나선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다. 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외 선사라면 채무 재조정 여부도 불확실하고 최악의 경우 P플랜(법정관리와 워크아웃이 합쳐진 프리패키지드플랜)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는 회사에 선박 발주를 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약은 누가 봐도 정부가 대우조선에 몰아주기를 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책은행과 정부가 현대상선에 국민 세금을 투입해 살린다고 해놓고, 결국 대우조선을 연명시키고 있는데 이용하고 있다"며 "경영정상화가 최우선인 회사가 부실기업을 지원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라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선박 입찰의 기준과 평가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대상선은 VLCC 선형의 이행실적과 프로젝트 이행능력, 기술 역량, 가격, 운영비용 경쟁요소 등 4가지 평가기준에 따라 대우조선을 선정했다고 밝혔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이번 수주와 관련해 조선업계는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정책금융의 지원과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을 고려해 언급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