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 등 운임수임 3조 챙겨 시장 점유율 확대 '반사이익' 현대상선, 한진해운 1.2% 흡수 항만업계 물동량 감소 직격탄
양대 국적선사인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이 부산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 현대상선의 컨테이너선이 부산신항에서 화물을 싣고내리고 있다.
[디지털타임스 양지윤 기자]"산업 자체를 위해 어떤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살려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연말 금융당국 기자단 송년 오찬에서 해운업 구조조정이 사실상 실패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산업을 잘 모르는 금융위가 금융논리로 잘못된 진단을 내렸다는 얘기를 많이 듣지만 (한진해운 법정관리는)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며 '유동성 문제는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구조조정의 원칙을 굽히지 않았다.
임 위원장의 원칙에 따라 역사 속으로 사라진 한진해운은 더 큰 손실로 답을 줬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이 지난 1~2월 아시아~북미 항로 선사별 점유율을 분석한 결과, 국내 1위 해운사인 현대상선은 5.9%로 2016년보다 1.2%포인트 상승하는 데 그쳤다. 반면 전 세계 1위 해운사 머스크의 점유율은 10.4%로 지난해(9.4%)보다 1%포인트 증가했고, 2위인 MSC 역시 0.9%포인트 늘어난 8.6%를 기록했다. 한진해운의 아시아~북미 노선의 점유율 7.4%(2015년 기준) 가운데 현대상선의 몫을 제외한 나머지 6.2%는 해외 선사가 가져간 셈이다.
특히 아시아~북미 노선에서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머스크와 MSC는 한진해운 몰락의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이 노선은 통상 1년 단위로 계약을 체결하는 데다가 안정적인 운송을 중요하게 여기는 대형 화주들이 포진해 있어 점유율 1%를 끌어올리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게 해운업계의 공통된 견해다. 여기에 한국과 아시아~북미 노선을 놓고 혈투를 벌였던 코스코(중국)와 에버그린(대만), 일본 국적선사들이 약진의 기회를 잡은 점도 뼈아프다. 이들의 시장점유율 확대로 인해 국내 항만업계도 덩달아 물동량 감소라는 역풍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한진해운이 사라지면서 해외 선사들은 약 3조원 가량의 운임수입을 챙긴 것으로 KMI는 파악한다. 이중 아시아~북미 항로에서만 새어나간 운임수입이 1조7758억원에 달한다. 한진해운의 영업망과 인력 등 무형 자산을 잃은 것까지 합치면 피해 규모는 커진다. 한진해운이 1조원의 운영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파산했다면, 한국 해운업은 한진해운을 잃게 됨으로써 반년 만에 3조원 이상을 손해 본 셈이다. 현대상선과 올해 출범한 SM상선이 앞으로 투자해야 할 시간과 비용을 더하면 '한진해운을 살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임 위원장의 발언은 더욱 설득력을 잃는다. 또 대우조선해양에 2015년 4조2000억원의 혈세를 투입한 데 이어 추가로 2조9000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점과 비교해도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전형진 KMI 해운시장분석센터장은 "아시아~북미항로는 한진해운이 시장점유율 7%대를 달성하는 데 20년이 걸릴 만큼 시간과 비용에서 공을 많이 들여야 하는 노선"이라며 "정부가 국적선사들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면 기존 지원방안을 업그레이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금융 중심으로 짜 맞춰진 지원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운사들이 정부의 선박 신조프로그램을 이용할 때 부채비율 잣대만 들이댈 게 아니라 중장기적 관점에서 선박을 건조할지 판단하고, 신속한 지원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