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함 전 연세대 정치학과 교수
양승함 전 연세대 정치학과 교수
양승함 전 연세대 정치학과 교수

지난 10일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결 주문이 읽혀지는 순간 탄식과 눈물이 핑 돌았다. 탄핵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대부분의 국민들은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대통령 탄핵은 헌정 사상 초유의 국가적 불행이자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국민 스스로 탄핵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수개월동안 탄핵 찬반으로 갈라진 사회와 새로운 정치상황의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엄습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통령 탄핵사태를 타산지석(타산지석)으로 삼는 지혜를 발휘한다면 미래는 밝을 것이다. 헌재의 판결은 현명하고 냉정했다. 법리 논쟁에 휘말릴 수 있는 탄핵사유에 대해서는 사유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하거나 판단을 유보했다. 단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실과 대통령이 이에 조력하고 진상 조사를 거부한 것은 대의민주주의제도와 법치주의를 위배함으로써 헌법 수호 의지가 없는 것으로 탄핵사유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통령이 권력을 오남용해서는 안 되며 법치주의를 존중해야한다는 중대한 경고다. 앞으로 선출될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대한 중요한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그동안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비판이 비등해 왔는데 이번 헌재 판결은 대통령도 법 앞에 평등하다는 진리를 구현한 것이다. 대통령은 국민이 위임한 막중한 권력을 헌법과 법률에 준해서 투명하고 공정하게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헌법을 잘 지키기만 해도 제왕적 대통령제를 벗어날 수 있다. 물론 대통령 단임제의 병폐를 해소할 개헌이 필요하겠지만 이번 탄핵 판결로 인한 새로운 정치지형 하에서는 제왕적 대통령이 발붙일 수 없게 됐다. 미래의 대통령은 진정으로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과 협의하며 궁극적으로 국민을 위한 통치행위를 해야 한다.

촛불시위는 탄핵을 주도하고 국민주권을 되찾은 시민명예혁명이다. 최순실 일당들의 부패와 부조리, 대통령의 비호와 은폐, 정경유착의 적폐 등에 대해서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하면서 대통령과 정치권에 압력을 가했다.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대규모 평화적 시위를 통해 정치권력을 끌어 내렸다. 그러나 시위가 지속되면서 탄핵에 반대하는 태극기 맞불집회와 심각한 갈등에 직면했다. 태극기시위의 집중도는 매우 높아서 촛불민심에 대한 적개심이 극에 달하기도 했다. 그래도 평화적 시위 기조는 한동안 유지됐지만 결국 헌재 판결이 나자 분노한 태극기시위 측이 격렬한 저항을 하여 세 명의 인명 손실과 수십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일부는 끝까지 투쟁해 대통령의 누명을 벗기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탄핵사태의 혼란이 장기화된다면 사회적 불안정으로 인해 국가는 끝없는 위기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태극기민심의 애국심과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시급한 것은 물론이며 나아가 사회적 적대감을 해소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지도자들이 헌신적으로 치유노력을 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각 정당의 지도자들이 탄핵에 대한 승복을 말하면서도 그 함의는 각자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이미 마음은 60일 이내에 있을 대선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략적 이해관계에만 몰두하는 정치인에 대해서는 국민은 신물이 났다. 이 시기에 국민이 원하는 것은 촛불과 태극기민심을 화해시키고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치유리더십이다.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이 있다면 국가위기 때마다 항상 단결해 극복을 해왔던 국민이다. 침묵의 다수로서 정의가 구현되길 갈망하는 다수의 국민이다. 다수의 국민은 광장정치로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겠다는 촛불과 태극기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들은 직접민주주의 한계를 알고 있다. 다양한 주장과 이해관계가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사회, 갈등과 대립을 제도와 법으로 해결하는 사회를 희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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