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IT산업의 아이콘인 안철수의원이 대선선거 운동의 일환으로 SW산업 부진과 4차산업혁명 공약을 발표하면서 우리나라 SW산업 부진의 원인과 처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안철수의원과 중소 SW산업 경영자들과 일부 정책입안자들 중에는 우리나라 SW산업 부진원인이 재벌에 의한 폐쇄적 독점구조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상식처럼 돼 있다. 대기업마다 소위 SI회사를 갖고 있고 그룹 내의 독점시장으로 인해 소위 범용 소프트웨어를 팔 시장이 없다는 주장이다.
논란이 많은 소위 SW산업진흥법도 이런 가정하에서 제정돼 시행되고 있다. 대형그룹사 SI업체의 공공프로젝트 참여를 금지해 '건전한 SW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전세계에 유래 없는 시장할당규제를 시행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SW산업 발달이나 건전한 SW생태계로 발전하기는 커녕 시장침체와 왜곡의 심화만을 가져왔다.
우선 SW산업이 재벌 때문에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의 타당성에 대해 엄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안철수의원이나 IT업계에서 말하는 SW산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과연 우리 같은 재벌이 없는 나라에는 그런 기업용 범용 SW산업이 발달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기업용 범용 SW 제품을 팔고 있는 나라는 미국을 제외하고 거의 존재하지 않다. 그것은 기업용 SW는 기업의 근간을 이루는 인프라로 가격보다는 안정성과 신뢰 브랜드가 지배하는 상품이다. 또한 현재 세계경제는 연결돼 있기 때문에 글로벌 표준으로 시장에서 인정되지 않는 제품이 사용되기는 어렵다. 이런 이유로 비즈니스 SW는 글로벌 승자독식현상이 심하다. 이 때문에 언어장벽이 적고, 문화적으로 우리보다는 훨씬 동질적인 유럽국가들도 비즈니스에서 범용 SW산업이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마치 재벌들이 SI회사를 접으면 비즈니스 SW산업이 가능한 듯한 주장은 이 산업의 특징을 간과한 비현실적 주장이다. 재벌의 SI회사들도 자체제작한 SW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만 보아도 IT업계에 팽배한 재벌 원죄론의 근거는 매우 희박한 신화일 뿐이다.
우리 대기업 집단들이 SI회사를 독자적으로 갖고 있는 이유도 재벌의 탐욕과 재벌중심 경제구조 탓으로 재벌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도 문제 원인을 심도 있게 파악한 주장인지 의문이다. 재벌기업들이 SI사업을 포기하려면 아웃소싱이 가능한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업들이 아웃소싱을 못하는 것은 과도한 공권력에 대한 두려움과 불신이 원인 중의 하나다. 기업이 모든 데이터와 전산시스템을 외부에 위탁한다는 것은 그 운영위험을 수탁회사가 감내해 줄 수 있는 재정능력이 있을 때 가능하다. 또한 모든 사업 데이터를 외부에 위탁할 때는 기업 기밀에 대한 보장이라는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우리 기업들은 규제 및 사법당국의 무분별한 수사에 대해 공포와 불신을 갖고 있다. 검찰이나 공정위의 수사 요구에 사법부는 비교적 쉽게 영장을 허용하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개인과 기업이 정부로부터 정보보호에 대한 신뢰를 보장받지 못한다면 정보자산 외부 위탁은 공허한 공염불이다. 이런 근본 원인은 그대로 두고 재벌의 도덕적 문제로 단순화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팽배한 반재벌, 반기업 정서에 편승한 단순 논리다.
무슨 사업이든 경쟁자가 다 자리를 비켜주면 돈을 벌 수 있다. 그런데 시장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혁신기업은 기존 대기업이 하는 사업을 해서는 승산이 없다. HP가 IBM이 지배했던 메인 프레임 컴퓨터 사업으로 도전해서 성공한 것이 아니고, 애플이 HP가 만들던 PC를 만들어서 성공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혁신 상품과 서비스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때 신생 기업에게 기회가 있는 것이다. 네이버, 다음 카카오와 같은 개인용 플랫폼 사업자와 온라인 게임업체들이 성공한 이유도 재벌이 하지 않은 영역에서 승부를 걸었기 때문이다.
SW산업발전 부진을 대기업에게 전가하는 것은 기존 사업자를 규제해 정부에 의한 시장을 할당받으려는 의존적 사고에 불과하다. 이는 결국 창업정신과 혁신능력 결핍의 고백이거나 재벌 때리기가 표가 된다는 정치인의 선거운동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