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헬스케어 시장, 연평균 40%씩 성장 구글 · 애플 · 삼성 등 대기업 선점 경쟁 생체신호 클라우드 저장해 당뇨병 관리 환자정보 입력하면 AI가 치료법 알려줘 정부, 진료정보 수집·활용 플랫폼 구축
지난달 17일 정세균 국회의장이 가천대 길병원에서 병원 의료진이 AI 의료시스템인 '왓슨 포 온콜로지'를 통해 암환자를 진료하는 것을 참관하고 있다. 연합뉴스
■ 2017 리스타트 코리아 기술융합이 여는 '넥스트 헬스케어'
미래 헬스케어 산업은 기존 치료 중심의 질병관리에서 '인간의 삶' 자체를 관리하는 개념으로 넘어가면서 일상생활을 송두리째 바꿀 전망이다. 이미 방대한 데이터를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이 의료현장에서 활약하고 있고, 구글·애플·삼성 등 거대 기업들이 헬스케어 산업에 뛰어들면서 병원에 가지 않아도 개인의 건강정보를 관리하는 서비스가 생활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특히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최신 기술이 헬스케어와 접목되면서 산업 간 경계는 급속도로 허물어지고, 차세대 헬스케어 산업을 선점하려는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경쟁에는 헬스케어 영역을 주도하던 기존 의료기관, 제약사뿐만 아니라 IT기업, 서비스업체, 보험사 등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뛰어들고 있다.시장조사기관 IMS헬스에 따르면 글로벌 헬스케어 산업은 지난 2015년 4조9700억달러 규모에서 연평균 6.8% 성장, 오는 2020년에는 약 6조8600억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특히 인공지능은 환자의 질병 진단에 본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가천대 길병원은 작년 12월 미국 IBM의 인공지능 '왓슨'을 암 치료에 적용한 '왓슨 포 온콜로지'를 국내 처음으로 도입했다. 인공지능 왓슨은 매일 쏟아져나오는 최신 의학정보를 빠르게 습득해 환자의 신체정보, 혈액·유전자검사 결과 등을 입력하면 수 초 만에 최신·최적의 치료법을 의료진에게 제시하는 조력자 역할을 한다. 부산대병원도 지난 1월 왓슨 포 온콜로지와 더불어 환자의 유전자 염기서열 등을 분석해 맞춤형 의료서비스를 돕는 '왓슨 포 지노믹스'를 도입했다.
미국 벤처기업 인리틱은 자기공명영상(MRI)·컴퓨터단층촬영(CT) 등 이미지 데이터를 인공지능이 분석하고 질병을 진단하는 시스템을 개발했고, 일본 도치기현 지치의대는 의료기기업체들과 협력해 환자의 증상과 건강정보 등을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유력한 병명과 확률을 계산해내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작년부터 운용 테스트를 시작했다.
시장조사 업체 프로스트앤설리번에 따르면 '글로벌 인공지능 헬스케어' 시장은 지난 2014년 약 6억3380만달러에서 연평균 40% 정도 성장해 2021년에는 6조6622억달러로 급팽창할 전망이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은 국내 인공지능 헬스케어 시장이 2015년 약 18억원에서 2020년 256억원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구글 스마트 콘텍트렌즈
구글·애플·삼성 등이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해 제공하는 헬스케어 서비스는 사용자 개인에 맞춘 생활습관 개선을 유도할 뿐만 아니라, 임상시험 활성화와 의료기관과의 연결에도 활용되고 있다.
구글은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건강 관련 지표를 측정하는 기술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 지난 2015년부터 임상시험에 활용 가능한 건강추적 스마트밴드를 개발 중인데, 임상시험 중 환자가 착용하고 있으면 병원 밖에서도 맥박·체온 등 상태를 측정해 약물 평가에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를 전송하는 구조다. 2015년 바늘이 필요없는 혈당측정기를 개발해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다. 2014년에는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와 손잡고 당뇨병 환자의 눈물에 포함된 포도당을 측정해 혈당 수치를 추적하는 '스마트 콘택트렌즈'의 개발에 나섰다. 작년에는 안구에 인공 용액을 주사해 각종 정보를 스마트폰과 연동하는 '안구 내장형 스마트렌즈'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다.
애플은 자체 건강 관련 플랫폼을 기반으로 의료기관과 개발자가 참여하는 모바일 헬스케어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14년 애플은 사용자의 건강정보를 모으고 아이폰과 애플워치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플랫폼 '헬스킷'을 발표했다. 헬스킷은 체온·혈압 등 기본적인 생체정보를 확인해 만성질환을 관리하거나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수집한 정보를 기존 의료정보가 기록된 전자의료기록(EHR)과 연계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위해 애플은 미국 최대 EHR 업체인 에픽시스템과 제휴를 맺었으며, 이미 미국 대형병원 중 4분의 3 이상이 헬스킷과 연계된 데이터를 만성질환자 관리 등에 활용하고 있다.
2015년에는 의사, 과학자, 연구자들이 모바일 기기를 사용하는 연구 참가자들로부터 건강 데이터를 모을 수 있도록 디자인한 '리서치킷'을 공개했다. 지금까지 임상시험이 특정 지역에서 한정된 인원을 대상으로 수행했다면, 임상에 필요한 데이터를 공간 제약 없이 수집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는 실제로 세계 최대 규모의 '파킨슨병' 연구 등에 활용되고 있다. 나아가 작년 3월에는 개발자나 의료기관이 환자 건강 관련 앱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소프트웨어 플랫폼 '케어킷'을 발표했다. 애플은 케어킷 관련 앱인 '원드롭'(당뇨병 관리), '스타트'(우울증 관리) 등을 우선 선보였다.
삼성전자는 자체 건강관리 플랫폼을 선보이며 헬스케어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지난 2013년부터 종합 건강관리 서비스 앱 'S헬스'를 개발, 스마트폰에 탑재했고, 2014년에는 심장박동·혈압 등을 감지하는 손목밴드 형태 '심밴드'와, 이를 통해 측정된 생체신호를 클라우드 서버에 저장해 사용자에게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플랫폼 '사미' 등으로 구성된 건강관리 플랫폼 '삼성 디지털헬스'를 발표했다. 2015년에는 미국 의료기기 업체 메드트로닉과 협력해 환자와 의료진 간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모바일헬스 솔루션을 개발키로 했다. 또 올해는 실시간 의료진 연결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미국 암웰, 웹MD 등과 협력해 S헬스의 기능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새로운 S헬스에는 온라인 검진 예약, 진료비 수납, 의사와 영상 의료상담 등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모바일 헬스케어 서비스 발전은 개인의 유전체 정보, 진료기록, 생활습관 정보를 합쳐 맞춤형 치료를 가능하게 하는 '정밀의료' 산업의 토대가 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리서치앤마켓은 정밀의료 산업이 2015년 45조원 규모에서 연평균 12.6%씩 성장해 2025년에는 147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커지는 시장만큼 세계는 급변하고 있다. 지난 2000년 시작된 미국의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서 한 인간의 생명정보를 담은 유전자 코드를 모두 읽어내는 데 10년이란 기간과 30억달러가 투입됐지만, 2010년부터 1000달러면 일반인도 유전정보를 알 수 있게 됐다.
올해 초에는 미국 생명공학기업 일루미나가 "100달러에 한 사람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선언했다. 지난 2007년 구글은 390만달러를 유전자 분석기업 23앤미에 투자했고, 이 회사는 2013년 기준 단돈 99달러로 유전적 특징, 약물 민감도 등을 분석해 지금까지 85만명분 이상의 유전정보를 수집했다.
국내에서도 정밀의료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마크로젠은 유전자 빅데이터를 활용한 정밀의학 실현을 위해 '아시안 지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테라젠이텍스 바이오연구소는 올해 국내 최초로 염기서열분석 임상검사실 인증을 받고, 유전체 분석에 기반한 맞춤 신약 개발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연세대병원은 개인맞춤치료센터(IPCT)를 열어 기초·임상 중개연구를 통한 암 정밀의료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서울대학교는 2014년부터 '헬스아바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유방센터는 '핑크아바타' 앱을 개발해 유방암 환자들이 어디서든 병원에서 치료 요약정보를 받아 볼 수 있도록 했고, 2015년에는 투석환자를 위한 '아바타빈즈'을 선보여 백병원, 강원대병원 등 전국 10여 개 병원에서 활용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도 최소 10만명의 유전·진료정보 등을 실시간으로 수집하는 '정밀의료 코호트'를 구축하고, 축적된 연구자원을 기업체·병원 등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연계 플랫폼을 구축하는 등 정밀의료 미래비전을 세우고 정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를 통해 2025년까지 세계 정밀의료 시장의 약 7%를 점유해 10조3000억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약 12만명의 고용을 창출한다는 목표다. 서울대 헬스아바타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김주한 서울대 의대 교수는 "인공지능과 헬스아바타는 환자의 참여를 활성화해 소비자 주도형 스마트 의료시대를 열고, 의료산업 전반의 획기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