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교량·터널 내진설계 강화 최우선
대리요령 등 정확한 정보 숙지도 필요



정부가 뒤늦게 지진 방재에 적극적인 투자를 시작한다. 내년에는 지진 관측망 확충과 국가재난관리 정보시스템 보강 등의 지진 방재 예산을 올해의 3배가 넘는 3669억원으로 늘인다. 국민안전처가 맡고 있던 문자 발송업무도 기상청으로 옮기고, 50초인 경보 시간도 2020년에는 10초 수준으로 줄이도록 할 예정이다.

그동안 우리에게 지진이나 화산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우리는 유라시아판과 태평양판이 만나는 '불의 고리'에서 1000㎞ 이상 떨어진 안전지대에 살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9월 12일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거대한 지각판의 내부에서도 강한 지진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우리가 애써 외면해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 백두산의 화산 폭발도 걱정스럽다는 과학적 근거도 밝혀지고 있다.

지진의 위험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주에는 지금도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16일에 일어난 규모 2.9의 지진을 포함해서 그동안 무려 582회의 여진이 일어났다. 규모 3.0 이상의 지진도 21회나 발생했다. 그뿐이 아니다. 제주·합천·대전·광주 등에서도 지진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물론 작은 지진이 잦아졌다고 반드시 더 큰 지진을 걱정해야 한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지진 대비에 적지 않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적극적인 준비는 반드시 필요하다.

지진 발생 사실을 주민들에게 빨리 알려주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정부가 경보 시간 단축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지진 경보 시간을 50초에서 10초로 단축한다고 피해가 크게 줄어든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특히 우리처럼 지진 대비 시설이나 대피 훈련이 부실한 경우에는 경보 시간 단축은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 지진에 의한 피해는 순간적·즉각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지진 발생 이후의 대응보다 지진이 발생하기 전의 준비가 훨씬 더 중요하다. 정부의 지진 대비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건물·교량·터널의 내진 설계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 물론 엄청난 예산과 사회적 투자가 필요한 일이다. 다른 대안은 없다. 경보 시간 단축이 실제로 부실한 내진 설계에 의한 피해를 줄여주는 꼼수가 될 수는 없다. 국민 스스로의 일상적인 노력도 중요하다. 평소 실내 가구와 진열대가 넘어지지 않도록 고정시키고, 천정의 시설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선반이나 장속의 무거운 물건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두어야만 한다. 지진이 발생할 경우 대피 요령도 미리부터 익혀두어야 한다.

지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는 일도 중요하다. 기상청이 알려주는 진앙의 위치와 '규모'(magnitude)는 지진 피해를 걱정하는 주민들에게 필요한 정보가 아니다. 주민들이 겪게 되는 피해는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경험하는 실제 지진의 정도를 나타내는 '진도'(intenstity)에 의해 결정된다. 진도는 진앙의 위치와 규모뿐만 아니라 지질학적 구조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기상청이 지진계로 직접 파악할 수 있는 실제 진도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납득하기 어렵다. 서로 다른 지점에서의 관측 자료들을 근거로 진앙의 위치와 규모를 추정하기 위해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

기상청이 2001년에 미국의 수정 메리칼리 진도를 도입해놓고 사용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기상청이 도입한 12단계의 진도 계급에 따르면 규모 5.8의 경주 지진은 경주에서는 내진 시설이 안 된 건물에 피해가 발생하는 VII 등급으로 느껴졌지만, 서울에서는 높은 건물의 위층에서 약간의 흔들림이 느껴지는 II 등급이었다. 로마자로 표기하는 기상청의 진도 계급을 우리 국민들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명쾌하게 정리해서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일본의 10단계 '신도'(震度, しんど)를 사용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 수도 있다. 전국의 지진 상황을 상시적으로 알려주는 앱도 개발해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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