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거수기' 역할 뿐 아니라 회사 고비 때마다 이사회 불참 대우조선·현대상선 등 '심각' 사외이사가 경영부실 방치한셈 현대·삼성중 참석률과 '대조적' 책임 묻지 않아 민감사안 회피
[디지털타임스 양지윤 기자] 지난주 파산한 한진해운을 비롯해 조선과 해운 등 구조조정 기업의 사외이사들이 '거수기' 역할도 모자라 회사의 고비 때마다 이사회에 불참하는 등 경영 감시자로서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대우조선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지난해 3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사외이사 4명 가운데 조전혁 전 새누리당 의원과 김유식 전 팬오션 부회장 겸 관리인의 이사회 출석률은 각각 72.7%, 80%다. 앞서 지난해 3월과 6월에 각각 퇴임한 이종구 바른정당 의원과 이상근 서강대 교수의 출석률은 33.3%, 80%를 각각 기록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2월에서 9월말까지 8번 이사회를 개최했는데, 사외이사 전원이 참석해 의결권을 행사했다. 삼성중공업 역시 송인만 성균관대 교수만 88%의 출석률을 기록했고, 나머지 3명의 사외이사는 100% 참석했다.
수십조의 국민 혈세를 쏟아붓고도 여전히 부실의 늪에 빠진 대우조선의 경우 민간기업보다 더 엄격한 경영감시가 필요하지만, 이런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특히 대우조선이 2013년부터 2014년까지 2년간 2조원 이상의 손실을 누락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었던 지난해 3월 정기이사회는 조전혁 전 의원이 불참한 가운데 3명의 사외이사 중 이상근 사외이사만 반대표를 행사했다. '흑자' 재무제표를 근거로 투자한 개인들이 집단 소송에 나설 수 있는 데다가 법적, 사회적 파장이 큰 사안임에도 정원종·이영배 사외이사는 결국 찬성표를 던졌다. 대우조선의 사외이사는 지난해 6월 선임한 김유식 전 팬오션 부회장을 제외한 3명의 임기가 내달 30일 종료한다.
지난해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으로 명운이 갈렸던 해운업계 역시 사외이사들이 경영 부실을 사실상 방치한 정황이 짙다. 현대상선은 내달 18일 4명의 사외이사의 임기가 만료한다. 이중 2005년 이후 사외이사를 맡아 온 에릭 싱 치 입 허치슨포트홀딩스 사장은 지난해 26번 열린 이사회에 모두 불참했다. 회사가 수년간 경영이 악화한 속에서 '2016년 사업계획'을 상정한 이사회에는 2명의 사외이사가 참석하는 데 그쳤다. 현대부산신항만과 벌크선 매각 등 알짜 자산 매각을 결정하는 건 역시 사외이사의 절반만 의사결정에 참여했다. 채권단이 조건부 자율협약을 개시하기에 앞서 생사기로에 놓인 중요한 시기임에도 사외이사들은 적극 나서지 않았다.
지난 17일 법원에서 파산 선고를 받은 한진해운 사외이사 역시 정우영 변호사만 이사회에 100% 참여했고, 나머지 사외이사의 출석률은 70~80%로 저조했다.
구조조정 기업들의 사외이사가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은 법원이 사외이사의 활동에 대한 책임을 엄격하게 묻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사외이사가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상정한 안건에 찬성한 것으로 간주하고 민형사상의 책임을 따진다. 반면 한국법원은 이사회에 참여하지 않은 사외이사의 책임은 따로 묻지 않아 민감한 사안을 상정할 경우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불참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이사회는 기업이 경영활동의 판단을 내리는 중요한 의사기구로 여기에 참석하는 것이 사내외 인사들의 의무이지만, 대우조선과 현대상선 등 구조조정 기업의 사외이사들은 향후 법적 책임 소재가 불거질 것을 우려해 이사회의 참석률이 낮은 공통점이 있다"며 "법원이 이사회에 참석한 이사들보다 더 엄격하게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