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된 비선실세 최순실씨(앞줄 왼쪽 여섯번째)와 조카 장시호씨(두번째),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네번째)이 17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법정에 출석해 피고인 석에 앉아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최순실·장시호·김종 첫 재판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인 '비선 실세' 최순실씨와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17일 법정에서 '삼성그룹 후원금 강요' 등을 놓고 엇갈린 주장을 폈다. 장씨가 최씨 소유로 추정되는 태블릿PC를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제출한 이후 처음으로 마주한 자리에서 최씨는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한 반면 장씨는 공소사실을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는 이날 오전 10시10분 서울법원종합청사 417호 법정에서 삼성그룹의 후원금을 강요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으로 기소된 최씨와 장씨,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에 대한 첫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이날 재판은 공판기일로 최씨와 장씨, 김 전 차관 모두 법정에 출석했다. 앞서 진행된 공판준비기일에는 세 사람 모두 출석하지 않았으며, 각 혐의에 대해 입장만 변호인이 확인했다.
이들은 삼성그룹 프로스포츠단을 총괄하는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에게 압력을 넣어 장씨가 운영하는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삼성전자가 16억2800만원을 후원하게 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강요)를 받고 있다. 또 한국관광공사 자회사인 그랜드코리아레저(GKL)에도 압력을 행사해 영재센터에 2억원을 후원하게 만든 혐의도 받는다.
이날 최씨와 김 전 차관은 모두 혐의를 부인하고 무죄를 주장했다. 최씨 측 변호인은 "장씨와 전 쇼트트랙선수 김동성씨가 재능을 기부해 동계스포츠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해서 영재센터를 도와달라고 (김 전 차관에게) 부탁했을 뿐 장씨와 공모해 직권을 남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전 차관에게 (영재센터) 운영에 관해 기업 후원을 알아봐 달라고 말한 적은 있지만, 특정 기업을 지목하거나 의무에 없는 일을 행하게 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김 전 차관은 삼성그룹 후원은 청와대에서 직접 처리한 일이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김 전 차관 측 변호인은 "삼성그룹 후원금은 청와대와 삼성그룹이 직접 소통해 처리한 일"이라며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메모 등 관련 증거에 의하면 이 후원금은 청와대와 삼성그룹의 수뇌부가 직접 소통해 지원된 것임이 이미 드러났다"고 말했다. 전날 특검팀에서 삼성그룹 측을 '강요의 피해자'가 아닌 '뇌물공여자'로 판단한 만큼, 김 전 차관 자신의 강요 혐의는 무죄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김 전 차관은 GKL을 압박해 영재센터에 후원금 2억원을 내게 한 혐의도 부인했다. 김 전 차관 변호인은 "GKL 대표에게 영재센터를 후원하는 방안을 검토해달라는 이야기를 한 건 사실이지만, GKL 사회공헌재단은 공익을 위해 설립된 재단인 만큼 재단 설립 목적과 취지에 부합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장씨는 최씨와 공모해 삼성그룹과 GKL을 압박해서 영재센터에 후원하게 한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최 씨의 지시를 받아 범행을 했다는 취지다. 장씨 측 변호인은 "강요와 업무상 횡령 혐의에 대해 인정한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안 전 수석 수첩의 사본 일부가 공개됐다. 이 수첩에는 '동계영재센터, 박 모 회장, 이규혁 선수, 춘천 꿈나무 캠프, 계약서 송부 9.7억'이라고 적혀 있었다. 검찰은 수첩을 제시하면서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기재한 것"이라며 "대통령은 (캠프에) 누가 참여하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두 알고 있었다. 부가세 제외하고 9억7000만원이라는 2차 후원금 액수를 거의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또 영재센터 후원과 관련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임대기 제일기획 사장의 진술이 공개됐다.
이 부회장은 검찰에서 '영재센터 회장 박 모 씨가 삼성전자 상무를 만난 사실을 보고받은 사실 있나?'라는 질문에 '없다'고 답했다. 임 사장은 "지난해 1월 5일 이태원의 한식집에서 김 사장과 김 전 차관과 만났다"며 "당시 김 전 차관이 VIP, BH와 같이 박근혜 대통령을 의미하는 용어를 쓰면서 박 대통령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