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언론학
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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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적도, 작성하라고 지시한 적도 없고 지금까지 블랙리스트를 본 적도 없습니다." 청와대-문체부-문화예술진흥위원회가 엮인 블랙리스트를 둘러싸고 문화예술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프랑스 주재 대사도 불러들이고 해외 문화원장도 소환 조사를 했건만 모든 혐의자들의 공통분모는 '모르쇠'다. 청와대 교육문화 수석을 지낸 사람 셋이 조사를 받았고, 문체부 전현직 장차관은 국회와 특검에 불려다니다 위증(僞證)으로 고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검은 블랙리스트 작성을 위한 정보 수집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의 인적(人的)정보가 동원된 단서를 잡고 관계자 소환을 서두르고 있어서 국가정보원의 민간인 사찰 논란이 재점화될 가능성도 있다"(동아일보, 2016. 12. 28). 총체적 난국이다. 국정이 올스톱 되고 있다. <공공기관장 인사 올스톱, 임기 끝난 22명 자리만 지켜> (한국일보, 2016. 12. 16) <뒷짐 진 정부… 5대산업 구조조정 올스톱> (조선, 2016. 11. 25) <국가원수·군통수권 등 헌법이 부여한 권한 올스톱> (서울신문, 2016. 12. 10)

올스톱(all stop)은 정부와 공공기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이나 사회의 기능까지 올스톱시키고 있다. "연매출이 120조에 이르는 재계 3위의 그룹 SK는 일상적인 경영활동 외에는 모든 것이 올스톱됐다"(머니투데이, 2014. 3.1) "16년 만에 처음으로 여소야대가 현실화하면서 그동안 정부와 새누리당이 추진해온 경기부양책이 사실상 올스톱됐다"(문화일보, 2016. 4. 14)

블랙리스트는 영어권에서 많이 쓰는 말이지만 올스톱이란 말은 영어에 없다. 올스톱(all stop), 매우 편리한 말이다. 전면 중지되든가, 마비 또는 중단된 상황을 두고 이 말을 쓰고 있다. 그렇다면 올스톱을 영어로는 뭐라고 해야 할까? 상황에 따라서 적절한 표현을 찾아 써야 한다. 파업으로 산업이 올스톱됐다(The strike paralyzed the industry). 전쟁이 격화된 탓에 헌법이 올스톱됐다(The constitution was suspended as the fighting grew worse). 눈보라 때문에 기차가 올스톱됐다(The trains came to a standstill in the snowstorm).

올스톱과 함께 자주 쓰는 말이 원스톱(one stop)이다. stop은 멈춤, 정지, 유숙(留宿), 정거장 등을 뜻하므로 원스톱은 한 번의 발걸음으로 여러가지 일을 모두 처리할 수 있을 때 쓴다. <부동산중개-이사-관리, 연말부터 원스톱 서비스> (동아, 2016. 2.4) <출생신고만 하면 양육수당 등 관련 공공 서비스 원스톱 제공> (문화일보, 2016. 1. 16)

원스톱은 one-stop shop 또는 one-stop shopping mall이 원조다. 한 번 가서 필요한 물건을 모두 살 수 있는 가게나 쇼핑센터를 가리킨다. 미국의 대도시 교외에는 대개 큰 규모의 쇼핑센터가 있다. 주방용품-침구 등을 파는 home depot, 사무용품을 파는 office depot는 물론이고 백화점, 아울렛, 대형 슈퍼마켓, 옷가게, 식당들이 몰려 있어한 번 가면 필요한 것을 모두 살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있는 문화예술인은 9473명이나 된다고 한다. 세월호 시국선언을 한 문인 754명,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을 한 인사가 6517명, 박원순 지지선언 인사가 1608명 등 반체제-반정부 인사가 다수 포함돼 있다. 시인 고은 도종환, 소설가 김홍신, 가수 이승환 전인권, 배우 송강호 하지원 백윤식 등도 이름을 올렸다. 문화융성위원회를 만들고 창조경제를 국정 목표로 내세운 정부로서는 반문화적이고 비창조적인 반달리즘(vandalism)을 자행한 꼴이 됐다. 반달리즘이란 고의로 또는 무지로 문화예술을 파괴하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블랙리스트(blacklist)의 역사는 꽤 오래됐다. 영국왕 찰스2세는 1660년 즉위하자 아버지 찰스1세를 사형시키는데 가담한 판사 등 58명을 블랙리스트에 올렸는데 이 가운데 13명을 처형하고 25명을 종신형에 처했다. 블랙리스트의 또 다른 이름은 살생부(殺生簿)다. 제거해야 하든가 기피인물의 이름을 기록한 장부가 살생부다. 살생부에 '죽일 사람' 외에 '살릴 사람' 이름을 함께 기록한 예도 있으나 통상 배려해야 할 명단은 따로 만든다. 영어로는 화이트리스트(whitelist)라고 하는데, 왕조시대에는 공신록(功臣錄)이라 불렀다. 요즘은 캠프에 몸담았거나 인수위에서 활동한 사람들이 공신록에 이름을 올린다. 블랙리스트는 문화의 다양성을 해친다. 자유로운 영혼 안에서 문화융성은 꽃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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