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녹화로 멧돼지수 급격히 늘어
개체수 조절 위한 기술 투자 필요



깊은 산속에서 살아야 할 멧돼지가 농촌과 도시에 출몰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애써 지어놓은 농사를 망쳐 버리고, 주민들의 생명까지 위협한다. 서울에서도 거의 매일 아파트와 주택가를 어슬렁거리는 흉측한 멧돼지 때문에 주민들이 혼비백산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멧돼지의 서식밀도가 크게 증가하면서 생기는 안타까운 일이다. 국립생물자원관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멧돼지 평균 서식밀도는 4.2마리에 이른다. 적정 서식밀도 1.1마리의 4배에 가까운 과밀 상태라는 뜻이다.

멧돼지의 수가 늘어난 것은 반가운 일이다.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심각하게 훼손된 자연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물론 멧돼지의 수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꿩·노루·고라니와 같은 야생동물도 많아졌다. 사라졌다고 믿었던 삵과 산양도 되돌아왔고, 청둥오리·가창오리·고니·떼까마귀와 같은 철새들의 멋진 군무도 훌륭한 관광상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핑계로 지나치게 망가뜨렸던 자연 생태계를 되살려놓으려는 노력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시뻘겋게 민낯을 드러냈던 민둥산을 울창한 숲으로 가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고,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실제로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에서 숲의 면적이 늘어난 유일한 나라다. 지난 반세기 동안의 급속한 경제성장·인구 증가·도시화를 고려하면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놀라운 성과다. 숲을 가꾸는 일에 적극적인 독일에서도 계속되는 도시화로 숲의 면적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자연과의 평화로운 공존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어렵사리 회복시켜놓은 자연에서 평화롭게 살아가야 할 멧돼지가 오히려 우리를 괴롭힌다고 불평할 필요가 없다. 멧돼지와의 평화로운 공존은 우리만의 순진한 꿈일 뿐이기 때문이다. 먹이를 찾지 못한 멧돼지에게는 인간과의 평화보다 스스로의 생존이 훨씬 더 중요하다. 굶주린 멧돼지의 입장에서는 먹거리가 잔뜩 널려있는 농경지의 유혹을 물리치기가 쉽지 않다. 멧돼지에게 자신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준 인간에 대한 배려를 기대할 수는 없다.

멧돼지를 무작정 포획하고 수렵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이미 전국에서 한 해 2만 마리에 가까운 멧돼지를 포획·수렵하고 있다. 그런 정도의 노력으로는 번식력이 왕성한 멧돼지의 개체 수를 충분히 조절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모든 국민을 사냥꾼으로 만들 수도 없다. 포획·수렵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위험도 무시할 수 없다. 살상무기가 될 수 있는 사냥용 엽총의 엄격한 관리도 중요하다.

자연을 살리는 일이 단순히 말로만 되는 것도 아니다. 나무를 심고, 입산과 벌목을 금지하는 일이 산림녹화에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산림녹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낙엽이나 장작에 의존하던 연료를 석탄·기름·가스로 바꾸지 못했더라면 울창해진 숲에 야생동물이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탄광을 개발하고, 원유를 수입해서 정제하고, 천연가스를 안전하게 공급하기 위한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었다.

멧돼지의 개체 수 조절을 위한 효율적인 기술 개발에 더욱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멧돼지의 생태에 대한 과학적이고 종합적인 정보가 필요하고, 왕성한 번식력을 통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도 찾아야 한다. 멧돼지에게 더욱 안전하고 넉넉한 서식처를 마련해주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필요한 경우에는 쉽게 용납하기 어려울 정도로 잔인한 수단을 동원해야 할 수도 있다. 단순히 '멧돼지를 산으로'라는 요란한 구호만으로는 멧돼지의 횡포를 막을 수는 없다.

자연에 대한 비현실적인 환상도 버려야 한다. 무엇이나 차면 넘치는 법이다. 자연과의 평화로운 공존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자연을 다시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 지배하는 거칠고 위험한 '야생'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 우리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자연과의 공존은 무의미한 것이다.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이라고 탓해도 어쩔 수 없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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