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없어졌지만 한 겨울의 피맛골은 어디서나 데운 술을 만날 수 있었다. 꼬치 굽는 연기를 피해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한 가운데 커다란 난로가 추위로 언 몸을 녹여줬다. 난로 위에는 어김없이 김을 모락모락 내뿜는 술이 담긴 주전자가 주당들을 기다렸다.
방금 구운 꼬치를 들고 알코올의 칼칼함이 극대화된 '대포' 한잔을 마시면 매서운 밖의 추위 따위는 금새 잊을 수 있었다. 저렴한 청주를 주전자에 직접 데워서 내던 정종대포는 맛을 즐기기보다는 어쩌면 추위를 떨쳐내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뜨거운 술을 즐기던 젊은 시절 동네마다 있던 대폿집 잔 안에는 언제나 겨울이 담겨 있었다.
사케가 대중화된 요즘 소비자들은 이제 데운 술에서 겨울의 정취뿐만 아니라 맛을 기대하게 됐다. 이자카야에는 자동으로 술을 데워주는 '주온기'가 비치됐고, 일부 사케바는 중탕기까지 들여놓고 도쿠리에 정성껏 술을 데워준다. 일본에는 이미 데워 마시기 좋은 전용 사케는 물론 다양한 개인용 주온기가 팔리며, 우열을 가리는 대회까지 존재한다. 단순히 온기만을 위한 것이 아닌 데운술 고유의 '맛' 그 자체를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아츠캉'은 따뜻하게 데운 사케를 말하는데 보통 중탕을 하며 고유의 향이 달아나지 않게 40~50도 이상은 넘지 않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하면 사케의 맛을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젖산과 호박산이 가진 고유의 산미가 단맛으로 바뀐다. 데운 술의 가장 큰 매력인 풍부한 감칠맛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 때 온도를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숨어있는 향과 맛이 열리며 밋밋한 술이 아름답게 채색되기도 하고 얌전했던 술이 괄괄해지기도 한다.
즐기기도 간편한데 주온기나 중탕기는 좀더 많은 양을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것이지 집에서 간단히 즐길때는 필요하지 않다. 혼술로 즐긴다면 냄비 하나에 머그컵과 적당한 사케가 있으면 그만이다. 누군가와 함께 한다면 약간의 사치를 부려 도자기로 된 도쿠리 하나쯤 갖춰놓자. 냄비에 물을 절반쯤 올려 끓기 시작하면 불을 끄고, 종이컵 하나 정도의 사케를 채운 머그컵이나 도쿠리를 넣은 후 약 1분 30초 정도 기다리면 약 50도 정도의 데운술이 완성된다. 여기에 편의점 등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어묵탕 팩을 곁들이면 술집이 부럽지 않다. 칼칼하고 풍성한 맛이기에 짬뽕이나 군만두를 곁들여도 좋고, 의외로 양념치킨과 환상적인 케미를 보여준다.
사케는 마트에서 취급하는 팩사케 종류면 충분하고 조금 신경을 써본다면 데워 먹을 때 빼어난 맛을 자랑하는'하나야구 준마이'이나 '가모츠루 혼죠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