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은 "논리적 모순을 일으키는 논증"을 일컫는다. '멀리 치려면 힘을 빼라'는 명제는 우리가 경험적으로 쉽게 접하는 역설 중 하나. 무엇이든 멀리 치려면 힘 있게 쳐야 하는데, 힘을 빼라는 것은 분명 역설이다. 이 역설을 이해하려면 무언가 겉보기와 다른 숨겨진 지혜를 찾아야 한다.
2017년은 정유년(丁酉年), 즉 붉은 닭의 해이다. 육십갑자의 뜻으로 해석하자면, '밝은 희망의 우렁찬 닭 울음소리가 개벽을 알리는 해'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정유년을 맞은 우리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역설적으로 가장 정유년답지 않은 상황에서 정유년을 맞게 된 것이다.
2016년 초 세계경제포럼이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포하자 우리의 자존심 이세돌은 신생 인공지능 알파고에 의해 무참히 무너진다. 인공지능이 뜨자 IT강국 대한민국의 이미지는 가라앉는다. 절치부심하던 찰라 한국경제는 또 하나의 타격을 입는다. 역작으로 내놓은 갤럭시 노트7이 품질결함으로 전세계적인 대규모 리콜을 선언한다.
이 시기 미국에서 안 좋은 소식이 전해진다. 보호주의의 부활을 공언한 도날드 트럼프가 대선에서 예상외로 승리를 한 것이다. 머피의 법칙은 계속되어, 대한민국에서는 최순실 국정농단사태와 대통령 탄핵소추로 국정이 마비되는 상황이 초래된다.
이러한 상황전개에 맹목적 비난과 자책과 한풀이만이 능사일까. 역설로 시작된 정유년의 운세를 역설로 풀어보자.
역설 1: 예측은 터무니없어야 잘 맞는다. 수출로 사는 나라한테 보호주의로의 회귀는 분명 위협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보호주의가 팽배하던 시절에 성장기반을 닦았다. 신보호주의는 우리에게 위협이 아니라 오히려 기회일 수도 있다. 신보호주의가 가져올 기회를 잘 탐색하면 재도약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역설 2: 개체가 똑똑하면 집단이 멍청해 진다. 똑똑함을 더했는데, 결과가 멍청함이라면 분명 역설이다. 우리는 소수의 엘리트에 의존하는 체제 속에서 살아 왔다. 그 신화가 깨지면서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자각의 계기를 맞고 있다. 대중적 자각이 정치지형을 선진화한다. 촛불민심이 선동과 대중심리에 부화뇌동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역설 3: 집착하면 잃고, 내려놓으면 얻는다. 성공에 집착하면 실패하고, 실패에 좌절하지 않으면 성공한다. 현대경영의 성장메커니즘은 한마디로 '파괴적 혁신'이다. 고정관념, 선입견, 기존시장, 기득권의 파괴 없이 새로운 생각, 새로운 시장, 새로운 가치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유년을 맞은 대한민국호. 조선, 철강, 해운업이 무너지는 소리에 비명을 지르고, 가전, 반도체, 정보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추격이 매섭다 해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긴장만 늦추지 않으면 된다. 우리에게 언제 위기가 아닌 때가 있었으며, 우리가 언제 칭찬을 먹고 경쟁력을 키워왔던가. 비난과 모멸, 그리고 부당한 매도 덕분에 우리는 오기와 승부욕을 키울 수 있었다.
미국이, 중국이, 일본이 우리를 비난하고 옥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아직 경쟁력이 남아 있다는 반증이다. 우리가 이대로 무너질 나라라면 우리는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아니라 연민과 동정의 대상이어야 한다. 전세계가 대한민국을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볼 때야말로 진정 대한민국의 위기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로 유명한 시인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시 '유희는 끝났다'의 한 구절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많고 많은 돌 때문에 우리 발에 이렇게 상처가 났어요. 발만 나으면 우리는 그 발로 펄쩍 뛸 거예요. 아이들의 왕이 왕국에 이르는 열쇠를 입에 물고 우리를 마중하면 우리는 이런 노래를 부를 거예요. 지금은 대추야자 씨가 싹트는 아름다운 시절! 추락하는 이들마다 날개가 달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