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말 기말고사 답안지를 채점하면서 학생들의 얼굴을 많이 떠올렸다. 대부분의 답안지에서 학생들의 많은 노력의 흔적이 묻어 나온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사회는 이러한 학생들이 졸업 이후 '좋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을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2016년 9월 현대경제연구원 자료를 보면 2015년 기준 전체 임금근로자 1931만 명 중 정규직이면서 월 225만 원(임금근로자 중위소득 180만 원의 125% 수준) 이상의 소득이 보장되는 '좋은 일자리'는 임금근로 일자리 전체의 34.9%인 674만 개에 불과하다. 다수의 일자리는 매일 30분 정도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주휴수당을 감안해 150∼200만원 사이의 소득을 보장하는데 그친다. 674만 개의 좋은 일자리 중 청년 일자리는 63만 7000개이다. 전체 청년(15∼29세) 950만 명 중 취업자가 395만 명이니 취업 문턱을 넘는 것도 어렵지만, 취업을 해도 6명 중 한명만이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병신년을 보내며 2017년에는 청년들의 일자리 상황이 개선되는 희망을 품어 본다. 역사적으로 볼 때 심각한 수준의 불평등 상황은 왕왕 선거를 통해 해결되어왔다. 지금은 우리가 당연시하는 누진적 소득세제나 사회보험의 도입, 정부의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 정책 우선순위로서의 완전고용 등은 선거로 선출된 정부가 민심을 반영한 결과다.
청년 일자리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기업의 생산성을 높여 임금수준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적으로 쉽게 가능치 않음을 감안할 때 2017년 선거 과정에서 논란이 될 단기적 정책 대안은 3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청년구직수당과 청년기본소득의 지급, 그리고 최저임금의 획기적인 인상이 그것이다.
우선, 청년구직수당은 빈곤가정 출신의 구직 청년을 대상으로 한정하기 때문에 재정적으로 현실적이다. 주거비나 생활비가 부족해 알바에 나서게 됨으로써 구직경쟁에서 조차 불평등을 경험하는 청년을 도울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하지만 청년구직수당은 한정된 좋은 일자리를 놓고 벌이는 경쟁을 부추기는 것 이상을 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청년기본소득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가정 형편과 관계없이, 모든 청년에게 매월 30만원을 지급할 수 있다면 150만원(현실)과 225만원(눈높이) 사이의 미스매치를 상당부분 완화시킬 수 있다. 63만개에 불과한 청년 좋은 일자리를 100만 개 이상으로 늘릴 수 있을 뿐 아니라, 구직활동을 포기한 청년 니트 중 상당수를 노동시장으로 유입시킬 수 있다. 하지만 연간 21조원(재학생을 제외한 594만 명의 청년에 월 30만원을 지급할 경우)의 예산이 소요된다는 점이 매우 부담스럽다.
최저임금을 획기적으로 인상하는 방안은 어떠한가. 가령 2017년 기준 6470원의 최저임금을 55% 인상해 1만원 수준으로 높이면 주 52시간 근무를 가정할 때 최저임금만으로도 200만 원 이상의 월 소득이 가능하다. 재정 부담 또한 없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의 1만원 인상은 지급여력이 부족한 다수의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주도하는 '민란'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는 가능치 않을 것이다.
얼마 전에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칼럼니스트인 리안 아벤트의 '인류의 부(The Wealth of Humans)'라는 책의 요약본을 읽었다. 아벤트의 주장은 "당신이 벌었을 수는 있지만, 당신의 부는 사회로부터 나왔음을 기억하라"는 것이었다. 빌게이츠의 성공은 빌게이츠의 재능과 노력이 없었다면 상상하기 힘들지만 만약 빌 게이츠가 다른 시대(예를 들면 18세기 프랑스), 다른 곳(가령, 현재 중앙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면 빌 게이츠가 성공을 할 가능성 보다는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빌 게이츠 이외의 다른 사람이 성공을 할 가능성이 높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정보처리조직의 존재는 빌게이츠가 성공하는데 빌게이츠 보다 훨씬 중요했다는 것이다.
2017년 대선을 통해 한국 사회 각계각층이 양보와 타협을 통해 청년고용상황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한국 사회를 지속가능한 사회로 바꾸는 예술을 보여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