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가 28일 퀄컴에 사상 최대규모인 1조3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데는 그동안 이동통신 기술과 칩셋 시장에서의 퀄컴의 독점적 지위를 남용과 부당한 시장 경쟁구조를 손질해야 한다는 국내 관련 업계 의견이 상당 부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퀄컴은 공정위의 이번 결정이 적법하지 않은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 즉각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하겠다고 밝혀 공정위와 퀄컴 간 법리 싸움이 장기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통신특허 독점 사업자인 퀄컴의 그간 시장 관행이 수술대에 올려진 만큼, 앞으로 스마트폰, 통신 칩셋 시장에 미칠 파장에도 촉각이 모아진다.

◆특허권 독점 퀄컴...연간 특허 수입료만 10조원= 공정위가 주목한 것은 퀄컴이 독점적 지위를 바탕으로 부당한 라이선스 계약을 지속해왔다는 것이다. 이동통신 산업은 특허 라이선스 시장, 모뎀 칩셋 등 부품시장, 휴대전화 시장, 이동통신서비스 시장으로 구성되는데, 퀄컴은 이 중 특허 라이선스 시장과 모뎀 칩셋 시장에서 독과점 사업자로 지위를 남용했다는 것이 공정위 측 판단이다.

퀄컴은 2G(CDMA), 3G(WCDMA), 4G(LTE) 이동통신 세대에 걸쳐 가장 많은 표준필수특허(SEP)를 보유하고 있다. SEP는 다른 기술로 대체 불가능하기 때문에 SEP를 보유하는 것은 사실상 독점력을 갖게 된다. 이에 따라 SEP 보유자는 국제 '프랜드(FRAND) 확약'에 따라 특허 이용자에게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인' 조건으로 라이선스를 제공하도록 해왔다. 퀄컴은 자신의 기술이 산업표준으로 채택되도록 국제표준화기구인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유럽전기통신표준협회(ETSI) 등에 '프랜드'를 선언했다.

그러나 퀄컴은 이를 어겼다는 게 공정위 판결의 핵심이다. 경쟁 칩셋 제조사인 삼성, 인텔, 비아 등이 SEP 라이센스 계약 체결을 요청하면 이를 이유없이 거절했다고 공정위는 판단했다. 또 퀄컴은 자신으로부터 라이선스를 받지 않는 휴대전화 제조사에는 모뎀 칩셋을 공급하지 않았다고 공정위는 주장했다. 휴대전화 제조사에 퀄컴이 일방적으로 정한 라이선스 조건을 강요하고, 휴대전화 제조사가 보유한 특허를 정당한 대가 없이 무상으로 제공하도록 했다고 공정위는 주장했다.

이 같은 불공정한 특허 영업으로 퀄컴은 특허료 수입만 세계적으로 연간 약 10조원에 육박한다고 공정위는 밝혔다.

◆퀄컴, 공정위 판단에 즉각 항소...법적 싸움 장기화 예고= 공정위의 이번 과징금 결정에 퀄컴은 즉각 "전례없고 수용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서울고법에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퀄컴 측은 "공정위 결정은 사실관계와 법적근거가 모두 부당하고 절차상 문제가 있다"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보장된 '적법절차에 관한 미국 기업의 권리'에도 어긋난다"며 반발했다.

퀄컴은 "경쟁을 제한했다는 공정위 주장은 증거가 없고 오히려 칩셋사, 휴대전화 제조사 간의 경쟁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오히려 퀄컴의 비즈니스 모델이 경쟁을 촉진하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에서 퀄컴이 얻는 특허 수입료도 공정위가 밝힌 전체 퀄컴 특허 수입료의 20% 안팎이 아니라, 3% 미만에 그친다고 주장했다.

퀄컴이 즉각 고법 항소 의사를 밝히면서 만약 대법원까지 소송이 이어지게 될 경우 법정 공방이 장기화하고, 이번 공정위 과징금과 시정명령 결정이 적용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일단 공정위 의결서를 받은 날로부터 60일 이내 퀄컴은 과징금을 납부한 후, 소송을 통해 퀄컴의 주장이 인정될 경우 감액분을 돌려받게 된다.

◆퀄컴 영업행태 수술대 위에...시장 구조 변화에 촉각= 공정위는 퀄컴에 과징금과 함께 불공정한 라이선스 계약에 대한 시정명령을 내렸다. 법원이 최종적으로 공정위 손을 들어준다면 그동안 울며 겨자먹기식의 계약을 체결해왔던 휴대전화 제조사, 경쟁 모뎀칩 제조사 등은 퀄컴과 특허 라이선스 계약에 대한 재협상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공정위는 퀄컴이 삼성전자, 인텔 등 경쟁 모뎁칩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을 경우, 판매처와 칩셋 사용 권리 등을 제한해왔던 부당한 제약조건을 금지하도록 했다. 또 통신 모뎀 칩셋 공급을 볼모로 포괄적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강요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관련 계약조항도 수정, 삭제하라고 명령했다. 휴대전화 제조사와 특허 라이선스를 계약할 때도 일방적으로 교차(크로스) 라이선스를 요구하는 조건 등도 시정하라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만약 이 명령대로 시행된다면 그동안 스마트폰 제조원가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퀄컴 칩셋 가격이 상당히 내려갈 것이고, 소비자 단말기 부담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퀄컴은 그동안 칩셋이 아니라 제조사의 단말기 가격을 기준으로 특허 사용료를 산정해왔다. 이렇다 보니 고가의 스마트폰일수록 더 많은 특허료를 챙겼다. 퀄컴이 자신의 특허를 사용하는 칩셋 제조사에 판매처를 제한했던 탓에 스마트폰 제조사가 비용을 줄이기 위해 다른 칩셋 제조사로부터 제품을 공급 받을 수도 없었다. 또 다른 칩셋 업체 제품을 사용하는 제조사를 상대로 특허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위협이 있었다. 박세정기자 sj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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