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현실로 드러나며, 그 변화의 추이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를 만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드라마로 세계에 한류를 보급하는 나라이며 국가 지도자가 스스로를 드라마의 주인공의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하는 나라이니만큼 드라마처럼 살아가는 것이 그리 낯설지도 않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드라마가 '문화융성'과 '창조경제'를 이룰 만큼 양질의 작품으로 보이지는 않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가 겪는 드라마는 '막장 드라마'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전혀 없다.
막장드라마의 특징은 극전개의 논리가 없이 비약하며, 우연과 거듭되는 반전의 효과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극전개를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막장드라마를 이루는 본질적인 요소를 하나만 거론한다면 '이원론적인 세계관'이라 할 것이다. 막장드라마는 세계를 선/악 이원적 세계의 대립으로 파악하고, 악에 의한 집요한 공격에 핍박받는 선이 마침내 승리한다는 도식 위에서 설계된다. 핍박이 강하고, 반복적인 만큼, 이에 대한 극복의 순간의 감정이 매우 강하게 증폭되는 장르이다. 바로 이 때문에 사람들은 막장 드라마를 좋아한다.
막장 드라마의 원조격인 19세기 유행 장르인 멜로드라마 역시 이 선/악의 이원론에 기초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드라마들의 선악의 문제는 윤리적인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대립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한다. 악은 선의 궁극적인 승리를 위한 극적 장치일 뿐이다. 이원론적 장치 위에 악에 의해서 핍박받는 비련의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이 여주인공을 위험에 빠뜨리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것은 믿었던 사람의 '배신'이다. 하지만 여주인공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단 한 사람, "어려울 때 곁을 지켜준" 충실한 단 한 명의 조력자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어선다.
이와 같은 도식은 어디서 많이 본 상황들을 환기시킨다. 그리고 이 도식은 항상 흥행을 보장하는 마법의 도식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바로 이와 같은 믿음은 다수의 지지를 요구하는 흥행이 필요할 때 우리 사회를 이원론적 대립으로 몰아간다. 좌/우, 진보/보수의 이념 대립, 영남/호남의 지역대립, 그리고 청년/중장년의 세대 대립은 멜로드라마의 선/악의 대립처럼 현실에서의 선거 흥행을 증폭시키는 극적 장치로서 도입된 것이다. 이와 같은 장치를 도입한 현실의 프로듀서들은 항상 흥행에 승리해왔다. 결국 그들은 멜로드라마 혹은 막장드라마라는 프레임 속에 우리를 가두어 버린다. 욕하면서 본다는 막장드라마처럼, 욕하면서 그들을 지지하는 '막장드라마 국가'가 되어버렸다. 시청률처럼, 지지율이라는 숫자 놀음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되어버린다. 그들은 어떻게 만들어도 30% 이상의 시청률이 나오는 양질의 문화콘텐츠의 제작자이며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국민은 시청자 혹은 설문응답자, 그리고 투표자로서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숫자를 채워주는 존재에 불과했다.
그러던 어느날 현실 속에서 멜로드라마를 압도하는 비극이 발생한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아이들이 죽어가는 비극을 겪으면서도 그들은 이 비극 보다는 멜로드라마를 보기를 강요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지경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드라마를 볼 감정적 여력이 없었다. 이제 사람들은 드라마가 아닌 뉴스를 보기를 원했다. 뉴스 또한 오래전부터 드라마처럼 허구화되었지만, 그래도 그 중 누군가 현실을 말하고 있었다. 뉴스가 말해준 것은 이제껏 우리가 드라마 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뉴스는 우리가 그 안에 있던 멜로드라마가 사실은 공포물이자 환상물이었음을 알려줬다. 부모 없는 백설공주가 난장이들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 백설공주가 사실은 백설공주에게 사과를 건네는 마법사 계모와 동일인물로 밝혀지는 막장·환상·호러 드라마였던 것이다. 숲 속 커다란 집 거울 앞에 늙기 싫어하는 할머니가 계속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마법을 사용하며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아름다우냐"를 묻고 있을 때, 그 사이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는 괴이한 드라마.
사람들은 이제 드라마를 더 이상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더 이상 시청자, 관객이 아니다. 사람들은 드라마라는 단어의 원뜻을 이제 이해하기 시작했다. 드라마는 어원상 '행동'이라는 뜻을 지닌다. 행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드라마인 것이다.
남들이 만든 드라마를 위한 천만 관객이 되기보다, 행동하는 주인공들이 만들어가는 드라마가 펼쳐진다.
누군가 그들을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조명할 필요도 없다. 그들은 아주 작은 불빛으로도 자신과 세상을 비출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