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교수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교수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교수


대학 시절, 한 교육학 교수님께서 이런 명언을 소개하셨다. "미국 교육의 목표는 조지 워싱턴과 같은 대통령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조지 워싱턴과 같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을 수 있는 시민을 키우는 것이다." 훌륭한 지도자도 중요하지만, 대다수인 구성원의 역량이 공동체에서는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 가운데 하나는 분명 그런 교육이리라. 2016년의 미국인들도 워싱턴과 같은 대통령을 뽑을 수 있는 시민을 키우도록 기획된 교육의 수혜자라면, 그들이 선택한 트럼프도 머지않아 워싱턴 같은 대통령의 모습을 보이리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트럼프가 그런 대통령이 아니라면, 미국 교육은 전면적으로 재고돼야 한다. 어쨌든 미국 교육의 목표를 기준으로 본다면, 한국 교육은 최악이었던 셈이다. 우리에겐 아직 전 국민이 두루 사랑하는 대통령에 대한 기억은 없고, 최근에는 앞으로 두고두고 몸서리칠 기억을 낙인처럼 아프게 갖게 되었으니 말이다.

프랑스에는 '바칼로레아'라는 이름의 대학입학시험이 있다. 첫 날 첫 번째 시험 과목은 철학이다. 4시간 동안 답안지를 써야 하는데, 세 문제가 출제되며, 그 가운데 두 개를 선택한다. 마지막 문제는 주어진 텍스트를 해석하고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것인데, 금년에는 한나 아렌트의 '진리와 정치'라는 책에서 출제되었다. 나머지 두 문제는 아주 간단하다. 이번 문제는 이렇다. "우리의 도덕적 확신(신념)은 경험에 기초하는가?" "욕망은 본성적으로 한계가 없는가?" 철학 문제는 공표되는 순간부터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된다. 학생들이 시험장에서 답안지를 채우는 동안, 프랑스의 국민들도 나름대로 시험을 치른다. 예컨대, 삼삼오오 카페에 모인 사람들은 그 문제에 대한 자신의 답안을 제시하며 진지한 토론을 즐긴다. 문제에 대한 정답은 없다. 논리성과 사실성을 갖춘 의견을 설득력 있게 피력한 수많은 답안들이 있을 뿐이다. 80분 동안 45문제에 대해 정해진 정답을 숨 가쁘게 찾아내야만 하는 우리의 수학능력시험 언어영역문제와 비교하면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싶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프랑스 학생들은 어떤 공부를 할까? 그들은 10년이 넘는 교육과정 동안, 그야말로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고민해야만 하는 수많은 철학적 문제들을 놓고 독서하고 반성하며 토론하며 글을 써야만 한다. 그런 교육을 통해 학생들은 대학에서는 물론, 사회에 나가서도 자신의 주장을 또렷하게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서로 논의하며 타협과 공존의 여지를 모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이 프랑스의 교육의 힘이며, 곧바로 프랑스의 힘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의 학생들은 어떤가? 십년도 넘게 그들은 채 2분이 안 되는 시간에 주어진 보기들에서 정답을 찾아내야 하는 수많은 문제들을 풀어 재껴야 한다. 이런 식으로 공부를 하고서 프랑스의 대학 입학시험을 본다면 어떨까? 좋은 결과를 거둘 리 없다. 프랑스 학생들처럼 네 시간 동안 두 문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차근차근 풀어내는 식으로 생각과 표현의 연습을 해 본적이 거의 없는데 말이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우리 교육의 병폐를 지적하고 비판한다. 그런 우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단지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중고등학생들이 연단에 올라 시민들 못지않게 자기 생각을 또박또박 피력하는 똘똘하고 당찬 모습을 보고서만 드는 생각이 아니다. 춥고 궂은 날씨에도 촛불을 들고 어둠을 물리치겠다는 의지로 광장으로 나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또렷하게 밝히는 이 수많은 시민들은 보면서 묻는다. 도대체 이들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저 멀리부터 되짚어 보면, 더욱 더 놀랍다. 일본의 식민통치로 나라 전체가 거덜이 나고 동족상잔의 격투로 폐허가 된 우리 한반도에 기적과도 같은 경제적 성장과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어낸 이 위대한 시민들은 도대체 어떤 교육으로 만들어졌단 말인가? 감동이 아닐 수 없다. 도덕적인 깜냥이 안 되는 사회 엘리트들이 노골적으로, 또는 은밀하게 횡포를 부리는 이 땅에 어떻게 이토록 성숙한 시민들이 생겨나 이토록 건강한 역사를 이어간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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