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태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MRC 건강노화 한의과학 연구센터장)
하기태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MRC 건강노화 한의과학 연구센터장)
하기태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MRC 건강노화 한의과학 연구센터장)


감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번 이상씩 겪게 되는 가장 흔한 질병이다. 만병의 근원이라고도 불리는 이 병은 실제로는 다양한 바이러스가 원인이 되는 다양한 질환을 묶어서 부르는 것이다.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와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서로 다른 것이기 때문에 구분해야 한다고는 한다. 그렇지만 이런 구분도 바이러스를 실제로 확인할 수 있게 되는 1950년대에 와서야 이뤄진 것이다.

감기를 영어로는 '흔한 추위(common cold)' 한자어로는 "추위에 상했다(傷寒)"고 부르는데 모두 추위와 관련이 있다는 경험적 추론에서 나온 이름이다. 그런데 실제로 감기가 추위와 직접적인 상관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논쟁이 이어져왔다. 감기와 추위의 상관성에 대한 연구 결과는 크게 두 가지로 모아진다. 먼저,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추운 겨울철에 잘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감기 바이러스는 사람을 비롯한 숙주 생물에 침입해야만 복제를 통해서 증식할 수 있고, 생물의 몸 밖에 있을 때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다. 특히 온도가 높을수록 감기 바이러스는 파괴되기 쉬우므로, 추운 겨울에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공기 중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추운 환경에서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전달이 더 쉽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것과 관련된 실험적 연구가 2007년 미국 공공과학원회보-병인(PLOS Pathogens)에 발표되었다. 그 연구에서는 기니어 쥐를 이용해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전달에 온도와 습도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밝혔는데, 온도가 낮을수록 상대습도가 낮을수록 바이러스의 전달이 더 많이 일어났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이유로 춥고 건조한 겨울 날씨에 감기나 독감이 더 흔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그런데 연구 결과 중에서 추위에 노출된 기니어 쥐에서는 독감 바이러스의 전달이 더 쉬울 뿐 아니라, 독감 바이러스의 생체내 생존율도 증가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현상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기능이 추위에 의해 감소할 것이라는 가정을 세웠지만, 실험결과는 면역기능의 차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본 연구팀에서는 이 부분에 주목을 하고, 추위에 의해서 독감 바이러스에 대한 수용체가 증가할 가능성에 대해서 확인을 했다. 그 결과 추위에 노출함으로써 독감 바이러스 뿐만 아니라 다양한 감기 바이러스의 수용체 역할을 하는 세포 표면의 시알화 당쇄 항원의 발현이 증가하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독감 바이러스의 표면에 존재하는 적혈구응집소를 이용한 실험에서, 세포 표면의 시알화 당쇄 항원의 발현을 억제시킨 세포에서는 추위에 노출되어도 적혈구응집소와의 결합이 증가하지 않았다. 이 연구를 통해서 본 연구팀은 추위는 바이러스의 생존과 전달을 더 쉽게 하는 환경적인 인자이면서 또한 사람의 호흡기가 바이러스에 더 쉽게 감염할 수 있도록 감수성을 증가시키는 인자로 작용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감기와 추위의 관계에 대한 기존의 두 가지의 이론은 감기나 독감이 겨울에 흔히 발생하는 이유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으로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감기가 유행할 때에도 어떤 사람들은 감기에 걸리지만 다른 사람들은 감기에 걸리지 않는 경험적 현상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는 대부분 개인의 위생 상태나 면역력의 차이 때문이라고 설명을 해왔다. 한의학에서도 "삿된 기운이 침입하는 곳에는 반드시 정기가 허약하다(邪之所注, 其氣必虛)"라고 해서, 개인의 면역력을 강조하는 이론이 발달해왔다. 어쩌면 추위에 노출되어서 증가하는 호흡기 표면의 바이러스 수용체가, 한의학에서 말하는 정기의 약화의 실체가 아닐까.

확실하게 기억해야 할 것은 '더울 때 껴입고 추울 때 가볍게 입는 멋쟁이'가 되면 감기라는 반갑지 않은 친구와 친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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