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욱 서울여대 경제학과 교수
이종욱 서울여대 경제학과 교수
이종욱 서울여대 경제학과 교수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제3차 대국민담화에서 대통령직 진퇴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대통령 담화에 대한 여야 정치권 반응은 엇갈렸다.

소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들썩인다. 하지만 한국 근대사에서 대통령을 둘러싼 국정농단, 또는 범법행위는 사실 새로울 것이 없다. 차지철의 국정농단에 격분하여 박정희 대통령에게 방아쇠를 당긴 김재규는 그렇다 치고, 전두환 대통령은 백담사에 유배를 당했고, 노태우 대통령은 감옥에 갔으며, 노무현 대통령은 조사를 받던 중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다. 그 외에도 전경환, 이상득 같은 대통령의 형, 아우 또는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들 또한 비선실세 노릇을 한 대가를 치렀다.

그런데 대통령을 한 명 뽑았더니 덤으로 최순실 대통령이 하나 더 따라왔더라는 작금의 1+1 충격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친위세력은 '대통령께서 퇴진할 정도의 불법은 없다' 그리고 아직도 보수 세력을 결집하면 10%대 지지지를 회복할 수 있다고 버틴다. 과연 그럴까?

국정운영이나 경제정책의 근간은 대통령에 대한 신뢰이며, 신뢰는 투명하고 공정한 행위를 통해 축적될 수 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 운영의 투명성과 공정성이란 두 가지 면에서 거의 치명적으로 국민들과 나라에 상처를 입혔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건 신뢰회복은 어려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기 직전에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신뢰에 대한 흥미로운 통계가 발표됐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2012년에 발간한 <우리 사회는 공정한가>라는 책의 통계를 보면, "정부는 깨끗하다"에 대해 긍정적인 답은 시민 6.7%, 공무원 44.1%, "정부는 정직한가"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한 시민 5.3%, 공무원 39.5% 이다. 이 서베이 통계는 정부에 대한 일반국민의 신뢰도가 얼마나 낮은가를 보여준다.박근혜 대통령은 이처럼 MB정부의 낮은 신뢰도를 물려받은 가운데 임기를 시작했지만, 이는 한편으로는 유리한 측면도 없지 않았다. 여자이고 독신대통령이라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앞선 정부들에 비해 공정성과 청렴성을 더욱 극적으로 부각시킬 수 있는 위치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은 비정상의 정상화와 공정사회를 강조해왔고, 공직사회를 정화하고 더 높은 경제성과를 창출하기 위해 결국 올 9월에 말 많던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 법)을 통과시켰다. 그 법은 일단 공직자, 교직원, 기자, 언론인 등 특정분야를 주로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그들을 상대하는 일반국민들도 상당수 직, 간접적으로 그 법의 영향 하에 놓여있기 때문에 파급효과는 매우 크다. 물론 추후 그 시행과정에서 약간의 조정을 받겠지만, 그 법은 분명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를 투명하게 만드는데 기여할 것이다. 이처럼 국민들을 대상으로는 밥 한끼 먹는 액수까지 삼만원, 조의금 오만원 하는 엄격한 법을 정해놓고, 박근혜 정부는 어떠했는가. 비선실세가 주도하는 창조경제니 문화융성이니 하는 알맹이 없는 거창한 슬로건이 있었을 뿐, 시작부터가 신뢰와 공정성이라는 개념은 담겨있지 않았다. 미래 한국 사회에 대한 비전과 그에 대한 열정, 그것을 이뤄나가는 과정상의 신뢰,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서 경제정책들과 국정은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지금 봇물 터지듯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는 비선실세들의 사욕을 앞세운 마구잡이 예산집행, 밀실 인사 전횡, 기업들과의 수상쩍은 거래 등, 온갖 비리의 집합을 보면 신뢰와 공정성이라는 단어자체를 쓰기가 무색하다.

감사의 표시로 일선 공무원에게 단돈 만원의 음료 선물을 한 것이 위법으로 처리되고, 학생이 교수에게 건넨 캔 커피 하나가 위법인가 아닌가를 얘기하는 한편에, 연일 신문 및 방송에 보도되는 비선 실세 및 청와대 비서진들의 위법 행위, 및 그와 함께 거론되는 어마어마한 단위 액수들은 일반 국민들의 김영란 법의 기준으로는 상상이 가지 않는 행태요, 금액들이다.

국민에 대해서는 부정청탁 금지법이라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절대 권력자와 그 측근들이 하는 청탁과 비리는 '선의의 통치 행위'로 정당화한다면 그것이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회인가. 이처럼 철저하게 무너진 신뢰 수준에서는 대통령이 주도하는 어떤 정책도 성과를 낼 수 없다. 회복 불가능이라는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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