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경제현안회의서 논의… 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 제2금융권에 동일하게 적용 소득증가율 사실상 '제자리'… 대출금상환 위해 소비 줄여 "실수요자 부담 가중" 비판… 투기만 늘고 시장불안 가중 KDI "LTV·DTI 환원 필요"
가계부채가 1300조원을 돌파하면서 정부가 24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8·25 가계부채 관리방안'의 후속조치를 발표했다. 도규상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이 기자들을 상대로 브리핑하고 있다. 유동일기자 eddieyou@
정부가 1300조원을 돌파한 가계부채를 잡겠다며 대출 심사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하지만 이미 아파트 등 주택가격이 치솟은 상태여서 대출만 규제하는 것은 오히려 실 수요자의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비판이 나온다. 부동산 경기 침체를 우려해 투기 금지 등 강력한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규제 완화와 금융정책이 엇박자를 내면서 결국 투기꾼 배만 불리고 서민의 부담을 늘렸다고 지적했다.
24일 정부는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제3차 경제현안점검회의를 열고 '8·25 가계부채 관리방안'의 후속조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아파트 잔금대출에 대해 '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을 전면 적용하고,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제2금융권에도 동일한 규제를 가해 부채 증가세를 본격 억제하겠다는 방침이다. 집단대출의 경우 2019년부터 매년 1조원씩, 2금융권의 경우 내년부터 매년 3000억원씩 부채가 감소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집값 치솟는데 대출 줄인다고 해결되나=문제는 이 같은 규제 강화로 '대출' 지표는 개선될지 모르나 실제 국민의 '삶의 질'은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3분기 가계신용현황에 따르면 9월 말 잔액기준 은행, 저축은행, 상호금융 등 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은 881조7000억원이다.
이중 주택담보대출만 544조4000억원이다. 예금기관에서 빌린 가계부채의 61.74%가 주택 구입을 위해 사용됐다.
같은 기간 주택 가격은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KB국민은행 부동산정보사이트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까지 전국 주택매매가격은 1.03%의 누적 상승률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서울 가격은 올 들어 전국 평균보다 2배 이상 높은 2.47%의 누적 상승률을 기록했으며 수도권은 1.79% 상승했다. 집값이 뛰니, 주택 구매를 위해 대출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대출 상환을 위해 다른 소비는 더욱 줄이면서 전반적인 소비침체까지 일어나는 형국이다.
실제 현대경제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가계부채가 소비 증가율에 미치는 효과가 '마이너스'(-)로 전환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보고서는 내년에 가계부채가 소비 증가율을 0.63% 포인트 떨어뜨릴 것으로 추산했다.
더 큰 문제는 소득 증가율이 사실상 제로(0) 수준이라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44만5000원이다. 물가상승률을 제외한 실질소득으로 보면 1년 전보다 가계 소득은 0.1% 감소한 수치다.
같은 기간 가계대출이 130조9000억원 늘어 11.2%나 증가한 점과 대비된다. 소득이 줄면서 대출이 늘어났다는 것은 그만큼 실소유 주택구매 등 '생계형 대출'이 주를 이룬다는 의미다.
때문에 대출만 억제하는 것은 자칫 서민의 숨통만 죌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헌 서울대 경영대 객원교수는 "1300조를 넘어선 가계부채가 전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갚을 능력'이 있는 건전한 가계부채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정부는 부실 가계대출에 대해 고민하고 이에 대한 구제 방안을 미리 마련해 위기 상황에 투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종의 사회 안전망을 가계부채 분야에서도 마련해 부채 상환능력을 상실한 '좀비 가계'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도록 위기 대응 능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가계부채 정책 엇박자, 시장 불안만 가중=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금융위원회 등 부동산과 가계부채를 총괄하는 정부부처 정책이 서로 엇박자를 내면서 시장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초 집값이 뛰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4년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부터다. 부동산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때마침 이어진 사상 최저수준의 저금리 기조를 타고 가계부채가 급격히 증가했다.
한국개발원(KDI)은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LTV·DTI 규제 환원이 필요하다고 직접적으로 지적했다.
김지섭 KDI 연구위원은 이날 보고서를 내고 "LTV·DTI 규제를 (최경환 전 부총리의)완화 이전 수준으로 환원해야한다"고 경고했다.
KDI가 이같은 경고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올 초부터 가계부채 급증의 근본 원인으로 저금리와 LTV·DTI 규제 완화를 꼽으면서 규제 환원을 통해 가계대출 증가세를 억제해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했다.
하지만 금융위원회는 지난 7월말 정례회의를 통해 LTV·DTI 규제 완화 수준을 1년 더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불과 2~3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정책으로 가계부채가 위험수치에 접어들었지만 '부동산 부양'이라는 정책 목표는 놓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금융권 부동산 전문가는 "부동산 시장은 심리가 매우 강하게 작용하다 보니 정부의 규제정책으로 시장이 얼어붙을까 우려하는 측면이 적지 않다"면서 "하지만 지난 8.25 대책 때도 전매제한 등을 제외하고 공급을 줄이겠다고 하면서 오히려 서울 일부지역 집값이 크게 상승하는 등, 정부 정책이 불과 한 두 달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시각을 보이는 경우가 잦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