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특파대사였던 이토 히로부미는 고종에게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다는 내용을 담은 '한일 협상조약', 우리에게 '을사늑약'으로 알려져 있는 조약의 체결을 강요했다.
고종은 조약에 끝까지 동의하지 않으며 자리를 떴지만 이토는 대신들을 협박해 조약 체결을 밀어붙였다.
8명의 대신 중 한규설, 민영기, 이하영은 반대했지만 이완용을 필두로 한 이근택, 이지용, 박제순, 권준형의 '을사오적'은 조약 체결에 찬성했고 이토는 각료 여덟 명 중 다섯 명이 서명했으니 조약이 가결됐다고 선언했다.
을사늑약은 고종이 조약에 도장을 찍지 않았을 뿐 아니라 대신들에게 위임장을 주지도 않았다는 점, 군대를 앞세워 강제로 체결된 점 등으로 정식 조약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1935년 발간된 하버드 법대 보고서는 효력이 발생할 수 없는 대표적 조약으로 을사늑약을 꼽기도 했다.
장윤원기자 cyw@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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