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오늘 점심이 어땠느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아마 주 메뉴였던 찌개 혹은 생선의 맛이 어땠는지를 설명할 것이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인상 깊은 반찬이 있었다면 그 반찬 이야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밥은? 오늘 먹은 당신의 밥은 어땠는가? 그 밥은 어디에 담겨 있었나?
'스뎅' 밥그릇. 한국 음식을 파는 많은 식당에서 볼 수 있는, 채 천원이 안 되는 이 흔하디 흔한 밥그릇은 관광 기념품 가게에서 볼 수 있을 정도로 한국을 상징하는 그릇이다. 사실 이 밥그릇은 가난하고 못 살던 시절의 산물이다. 정부가 나서서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해 크기(지름 10.5㎝, 높이 6㎝)와 담는 양(5분의 4)을 규정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 식당에는 행정적 처벌을 내렸다. 당시 인기를 끌던 스테인리스 스틸과 맞물려 똑같은 크기의 '스뎅 밥그릇'이 전국 식당에 널리 퍼졌다. 식당 입장에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 그릇은 가볍고 깨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뚜껑이 있기에 미리 밥을 담아 온장고에 넣어둘 수 있었다. 그러면 손님이 몰려도 빠르게 밥을 낼 수 있었다.
편리성을 얻었지만 잃은 건 '밥맛'이다. 갓 지은 따뜻한 밥을 이 그릇에 담아두면 밥에서 나온 김이 뚜껑에 고여 다시 밥으로 떨어지면서 밥알이 물에 붓는다. 금속의 특성상 수분이 날아가거나 흡수되지 않고 그릇 안에 고이기 때문에 밥알이 뭉쳐 엉겨붙기도 하고, 오랜 시간 보관되어 있었기에 겉면이 마르거나 색이 변하기도 한다. 맛뿐만 아니라 품격도 잃었다. 온장고에서 갓 꺼낸 밥그릇은 만지기도 어려울 정도로 뜨거운데 그래서인지 던지다시피 식탁에 내려놓으며 요란한 소리를 낸다.
맛도 없고 멋도 없는 이 문제의 스뎅 밥그릇을 내놓는 식당 주인을 욕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왜 스뎅 밥그릇을 내놓는지'다. 짧은 점심시간 동안 몰리는 손님을 다 받아야, 그래서 테이블 회전율을 높여야 식당은 먹고 살 수 있다. 그래서 밥맛이 떨어지더라도 품이 덜 들고 시간이 덜 드는 이 그릇을 선택한다. 손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얼른 밥을 먹어야 남은 시간 잠깐이라도 쉴 수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밥맛을 따지는 건, 사치다.
그런데 말이다, 밥맛 따질 겨를 조차없이 바쁘게 살아가는데 과연 타인의 삶이 눈에 들어올까? 항상 바쁘게 살며 오늘의 행복을 다 내일로 미루기만 하는데 그 내일이 오기나 할까? 스뎅 밥그릇 하나 사라진다고, 밥상머리에서 조금 깐깐해진다고 우리 삶이 갑자기 더 나아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접하는 이 밥그릇이 무얼 의미하는지는 알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사는 세상을 선택할 수 있다. 빨간 약을 먹고 진짜 세상을 마주 보기로 결심한 매트릭스의 네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