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경제정책의 기조가 규제 개혁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지난 8월 소상공인연합회와의 간담회에서 "도가 지나칠 정도로 골목상권을 침해하는 대기업이 있다면 신경을 쓰겠다"며 "큰 경제정책의 하나로 많은 관심을 두겠다"고 말했다. 대기업이 자유롭게 틈새 시장에 진출해 소상공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태를 규제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유승민 의원 역시 지난 달 말 '혁신을 통한 성장'을 역설하며 "재벌이 골목상권까지 침해하는 구조로는 혁신성장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골목상권을 침해하는 대기업의 행태에는 적절한 규제가 가해져야 한다는 게 여당의 공통된 기류이며, 정부정책으로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시사한다.
정부가 현재 '유료방송발전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연구반을 가동하고 있으며, 조만간 그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SK, LG, CJ, KT, 태광 등의 대기업들이 유료방송시장을 주도하고 있음에도 정부가 이를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위기 상황에 직면한 중소 규모 케이블TV 사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정부가 유료방송시장의 발전을 고민하는 것은 여당 의원들이 골목상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런데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와 비슷한 행태가 유료방송시장에서도 자행되고 있다. 국내 이동통신 지배적 사업자가 막대한 자금력과 대리점 영업망을 앞세워 자회사의 IPTV 상품을 대규모로 위탁판매해 줌으로써 케이블TV사업자들의 위기를 키우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초고속인터넷도 재판매를 통해 급속도로 가입자를 늘리고 있는데 대부분의 케이블TV사업자들이 초고속인터넷도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이동통신 지배적 사업자의 물량 공세는 그 자체로 케이블TV에는 엄청난 위기 요인이 되고 있다. 게다가 계열사 관계에 있는 이들 회사가 상호간에 이동전화, 인터넷, IPTV 등을 결합하여 요금을 할인해 주고 케이블TV보다 더 많은 가입 경품을 내걸고 있어 중소 케이블TV는 이 거대한 재벌사와의 경쟁에서 더욱 이기기 힘들게 되었다.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라 불리는 이동통신에서 확보한 막대한 자금력과 영업망을 토대로 유료방송시장까지 장악하려 함으로써 유료방송업계 전체가 흔들리는 지경까지 온 것이다.
또한 모든 방송사업자는 방송의 특수성으로 인해 정부의 허가를 받고 주기적으로 심사를 받은 뒤 재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방송이 국민 의식과 여론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정부가 방송에 대해 거버넌스를 행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료방송시장에 진입한 기업체 중 유일하게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은 회사가 바로 이동통신 지배적 사업자다. 비록 자회사가 방송사업권을 획득해 IPTV상품을 판매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적으로 모회사가 IPTV를 위탁판매할 뿐만 아니라 상담, A/S까지 진행함으로써 사실상의 방송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허술한 법망을 피해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은 사업자가 유료방송시장에 우회진입한 것이다. 이는 명백한 법률 위반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다양한 사업자들이 참여해 경쟁하는 유료방송시장에 거대 재벌이 진입해 중소사업자들을 고사시키고 시장을 교란하는 것을 방관하는 것은 말 그대로 골목상권을 보호하겠다는 정부와 여당의 기류가 허언에 불과하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또한 방송사업허가를 받지 않은 사업자가 방송사업을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며 방송법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이동통신 지배적 사업자의 IPTV 위탁판매는 반드시 규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유료방송발전이라는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는 그 어떤 방안도 공염불에 그칠 수 밖에 없다. 유료방송업계가 위기에 빠진 근본적인 원인이 이렇게 분명한 데도 규제의 칼을 빼 들지 않고 지엽적인 방편만 추구해서는 케이블TV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는 결과 밖에 예상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