콕 찍어 말하긴 어렵더라도 아마도 그리 긍정적인 이미지는 아닐 것입니다. 실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다단계'와 '다단계 판매'를 각각 검색하니 피해, 사기, 수법, 불법, 유령회사, 신용불량 같은 단어가 연관검색어로 뜨네요. 워낙 불법 다단계로 인한 피해사례가 많고 주변 지인들까지 곤경에 빠뜨리며 사회문제로 떠오르다보니 부정적 인식이 팽배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다단계 자체는 합법입니다. 현행 방문판매 등에 대한 법률(방판법)이 합법 다단계에 대해 규정하고 있지요. 다단계는 한마디로 '소비자가 판매자가 되는 판매 방식'입니다. 합법 다단계는 가입비가 없거나 연간 1만원 미만이며, 재고부담과 하위 판매원 확보 의무가 없으며 상품의 환불이 가능합니다. 바로 이런 점이 피라미드 등 불법 다단계와의 차이점입니다.
그런데 지난해 초부터 이동통신시장이 다단계 논란으로 시끄럽습니다. 다단계 자체는 합법이라는데, 무엇이 문제일까요.
◇20년 된 통신 다단계, 단통법 시행 후 급증= 사실 이동통신시장에 다단계판매 방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지난 1996년입니다. 올해로 20년이 됐으니, 나름대로 통신 다단계의 역사도 오래된 셈입니다. 당시에도 포화한 이통시장의 가입자 경쟁을 위해 KTF(현 KT로 합병), LG텔레콤(현 LG유플러스로 합병)이 다단계 판매를 활용했습니다. 휴대전화뿐만 아니라 무선호출기(삐삐), 국제전화카드, 선불카드 등이 주요 판매 상품이었죠. 그러나 2002년 들면서 각종 문제점이 노출되면서 규제당국이 통신 다단계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그 이후로 2014년까지 통신 다단계는 음지에서 암암리에 이어올 뿐이었지요.
터닝 포인트는 2014년 10월 1일 시행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입니다. 보조금(지원금)에 상한액이 생기고 액수를 전국에 동일하게 공개하다 보니, 이동통신사 입장에서는 예전처럼 보조금을 활용한 가입자 유치가 어려워졌습니다. 통신 다단계가 이통시장에 화려하게 재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다단계를 통해 이동통신에 가입한 이용자 수는 55만2800명입니다. 구체적으로 LG유플러스가 43만5000명으로 전체의 78.7%로 가장 많고 KT 6만6200명, SK텔레콤 5만1600명 순입니다. 아무래도 3위 사업자인 LG유플러스가 가장 적극적으로 다단계를 이용해 가입자를 모으는 모습입니다. 실제 단통법 시행 전인 2014년 9월 30일 기준 LG유플러스의 다단계 가입자는 9만5833명이었으나, 단통법 후 지난해 5월말까지 약 2.65배 증가했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6월까지 6개월 동안만 살펴봐도 LG유플러스 전체 LTE 가입자가 5.4% 증가하는 동안, LG유플러스 다단계 유통점의 가입자는 무려 32.1% 늘었습니다.
◇부작용 여전, 휴대전화 다단계 향방은= 문제는 다단계의 부작용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IT 정보에 어두운 노인층에 고가 요금제와 특정 단말기를 강요하는가 하면, 취업을 미끼로 대학생, 취업준비생 등을 휴대전화 다단계에 끌어들이는 사례가 늘며 각종 부작용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거마 대학생'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지요. 거마 대학생은 송파구 '거'여동과 '마'천동에 있는 숙소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다단계 업체에서 일하는 대학생을 뜻합니다.
다단계 자체가 합법이더라도, 영업과정에서의 불법행위는 제재 대상입니다. 벌써 지난해에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올해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각각 전기통신사업법과 단통법, 방문판매법 위반으로 LG유플러스와 회사의 다단계 유통점에 제재 조치를 내렸습니다.
방통위의 다단계 심결서를 살펴볼까요? 우선, LG유플러스는 다단계 대리점에 일반 대리점보다 훨씬 많은 수수료(리베이트)를 제공해 불법 지원금 지급을 유도하는가 하면, 공시지원금보다 지원금을 더 많이 지급했습니다. 또, 이용자에게 별도 지원금을 주는 조건으로 특정 요금제를 강요하고, 이를 위반하면 위약금을 부과했지요. 그러다 보니 회사의 다단계 가입자 중 6만원대 이상 고가요금제 비중이 86.4%에 달했고, LG G프로2, G3 등 특정 단말기 가입자 비중이 61.8%에 이르렀습니다.
또, 공정위 의결서에는 회사 다단계 대리점들이 판매원 등록을 조건으로 연간 5만원을 초과하는 구입 부담을 지웠고, 휴대전화 단말기와 약정기간 동안 통신요금을 합해 160만원을 초과하는 등 방판법을 위반했다고 명시하고 있네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휴대전화 다단계에 대한 논란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최근 SK텔레콤과 KT는 연내 다단계 판매를 중단할 뜻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다단계 비중이 큰 LG유플러스는 쉽게 중단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동안 LG유플러스는 "소비자 피해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며 유지 입장을 고수해왔습니다. 그러다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대표이사가 불려가고, 입장 번복 논란을 빚은 끝에 겨우 "중단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발언을 내놨지요. 또, LG유플러스의 다단계 대리점들은 방통위와 공정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기도 합니다.
다만, LG유플러스가 진짜 다단계를 중단할지는 미지수입니다. 다단계 유통점들과의 계약이 내년 1월까지인 만큼, 그때가 돼야 LG유플러스의 진의가 드러날 것으로 보입니다. 정윤희기자 yuni@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