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ETRI 원장
이상훈 ETRI 원장
이상훈 ETRI 원장


매년 10월 세계는 스웨덴 한림원으로 이목이 집중된다. 노벨상이 차례로 발표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노벨문학상은 국경 없는 세계 문학계를 술렁이게 하고 세계 문학의 미래를 가늠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노벨문학상은 번역이 된다하더라도 원작은 자국의 언어로 그 민족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언어 속에는 그 나라의 고유문화를 비롯한 철학, 역사 등 민족의 정체성이 내재되어 있다. 때문에 언어라는 매개체는 그 나라 주권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동안 우리나라 현실은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공부에 막대한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있다. 아니 소비하고 있는 것이 맞다. 영어 어린이집부터 시작해 조기 유학 그리고 외국어학원, 취업준비까지. 태어나서부터 시작한 외국어 공부는 취업 이후까지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에 쏟아 붓는 막대한 돈과 시간은 거기에 비례해서 얼마만큼의 효용가치를 얻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국력은 더 강해진다고 하는데 말이다.

올해가 훈민정음 창제 570돌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 8일과 9일 '온 세상 한글로 비추다'라는 한글문화 큰 잔치를 서울 광화문 광장 일원에서 가졌다. 그 행사의 일환으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 대비한 음성언어 자동통역기술이 선보였다. 우리말을 비롯한 영어, 일어, 불어 등 8개 나라 언어를 동시 통역해주는 기술이다. 언어장벽 없는 올림픽을 위해 그동안 꾸준히 연구개발 했으며 현재도 진행 중이다.

음성인식 기술에는 고난이도의 원천기술과 함께 오랜 기간 긴 호흡으로 연구에 몰두해 온 연구원들의 땀과 시간이 녹아 있다. 30여 년 동안 갖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긴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연구에만 몰입했던 인내의 산물이기도 하다. IMF외환 위기와 벤처 창업 붐으로 연구원들이 대거 이탈했음에도 불구하고 썰렁한 연구실을 지키며 꿋꿋하게 음성인식 연구의 한길을 걸어 온 장인 정신도 배어 있다. 기술의 7부 능선을 넘은 음성인식 자동통역기술은 지속적인 기술 진화를 통해 동시통역, 강의통역, 응용 통번역이 가능해질 것이다. 강의실에서 강의통역이 실시간으로 실현되고 콘퍼런스의 동시통역이 연구원들의 노력으로 실현될 날이 멀지 않았다.

인간은 물리적, 지능적으로 수 십개국의 언어를 동시에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학습하기도 어렵다. 언어 장벽을 느끼고 사는 사람들에게 음성언어 자동통역기술은 소통의 한계를 뛰어 넘게 하고 있다. 연구자들과 언어학자들의 부단한 노력의 산물이다.

한글을 중심으로 외국어를 동시에 자동통역할 수 있는 기술은 570년 역사의 한글이라는 언어와 대한민국이라는 정체성을 동시에 세계인에게 확인시켜줄 수 있을 것이다. 요람에서부터 무덤까지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열풍에 빼앗겼던 570년 역사의 자랑스러운 한글 주권을 복권시켜 세계 속의 언어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된 의의도 있다.

이렇듯 과학과 ICT 기술은 인간의 신체적, 지적인 능력을 확장시키고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의 언어를 몰라도 무리 없이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이 바로 앞에 와 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은 정보통신 선진국인 우리나라로서는 좋은 기회다. 이런 세계적인 마당에서 선보이는 음성언어 자동통역기술은 한글의 위상을 높이고 IT 강국 대한민국의 명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각국의 언어들이 음성인식을 통해 자국어로 번역되고 자국어가 상대방 나라의 언어로 전달되면서 언어 장벽 없는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한글은 더욱 더 자랑스러운 언어가 될 것이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