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글로벌 투자은행(IB)을 대표하는 골드만삭스는 수년 전부터 스스로를 금융회사가 아닌 정보기술(IT)회사로 자청하고 있다. 실제 골드만삭스는 IB와 트레이딩 인력를 줄이는 대신, IT 개발자의 채용을 늘려왔다. 현재 골드만삭스의 IT 인력은 약 1만 명으로 전체 인력의 약 30%를 차지한다. JP 모건, Citigroup 등 여타 글로벌 IB들 역시 과거 주력 사업부서의 인력을 줄이는 대신 IT 개발자의 채용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글로벌 IB들은 내부 IT 역량을 강화하는 것과 함께 IT 스타트업 회사들의 지분 투자를 늘리고 있다. IB, 트레이딩, 자산관리 등 전통적인 사업 분야 뿐 아니라 소매 금융, 지급결제, 리서치 분석 등 금융 산업 전반에 걸쳐 IT 투자를 나서고 있다. 구체적으로 빅데이터, 인공지능, 금융보안 등 IT 원천 기술과의 융합을 시도하고 있다. 심지어 골드만삭스는 금융과 IT의 융합을 넘어 IT 플랫폼 사업자로의 변신을 선언했다.

이처럼 글로벌 IB들이 IT 투자를 늘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IB를 대표하는 ECM(Equity Capital Market)과 DCM(Debt Capital Market)의 성장세가 둔화됐기 때문이다. 산업구조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 빠르게 변하면서 주식과 채권을 통한 대규모 자본조달 수요는 한계에 봉착했다. 실제 선진국을 중심으로 대규모 자본조달을 통한 고정 설비 투자는 줄어든 가운데, R&D 등 무형자산을 기반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서비스업의 수요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016년 상반기 기준 미국 IPO 시장의 수수료 수입은 37억 달러로 최근 20년간 최저치를 기록한 반면 ICT 기반의 비상장 유니콘 기업의 숫자는 약 200여개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다음으로 트레이딩과 자산관리 등 자본시장의 수익성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전자 거래가 보편화되고 중개기관간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자본시장의 거래 수수료율은 꾸준히 감소해왔다. 저금리·저성장 여파로 금융시장의 변동성마저 하락하면서 거래 참여 유인도 줄었다. 설상가상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형 IB에 대한 자기매매(prop-trading) 규제가 강화됨에 따라 트레이딩 사업부의 수익성은 급격히 악화되었다. 다행히 자산관리 분야의 수요는 증가하고 있지만, ETF 등 인덱스 펀드 비중이 증가하고 있고 운용회사간 수수료 경쟁이 확대되면서 자산관리 분야도 더 이상 높은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글로벌 IB들은 자연히 수익 다변화와 비용 절감을 위해 IT 투자를 늘려야 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금융과 IT의 융합을 통해 금융혁신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IB들에게 금융혁신이란 새로운 수요 창출을 뜻한다. P2P 대출, 인공지능 기반의 자산관리 서비스, 분산원장 기반의 거래플랫폼 등이 핀테크를 통한 혁신 사례로 꼽힌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저금리 대출을 희망하는 자금 수요자와 고금리 수익을 기대하는 자금 공급자간에 시장 형성이 어려웠다. 그러나 P2P 대출 서비스의 등장으로 자금 수요자와 자금 공급자간 중금리 기반의 자금중개시장이 형성되는 등 새로운 금융 수요를 창출했다. 그 외 실시간 공시 및 회계 정보를 이용한 시장감시시스템, 사물인터넷간 송금·결제 서비스 등 핀테크를 통한 금융혁신은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국내 증권회사도 오래전부터 글로벌 IB를 꿈꿔왔다. 골드만삭스, JP모건을 본받아 IB와 트레이딩 역량을 키우는데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아쉽게도 현재 글로벌 IB로 불리는 한국 금융회사는 탄생하지 못했다. 국내 금융회사가 IB와 트레이딩 등 전통적 금융 사업을 추구하는 한 앞으로도 한국에서 글로벌 IB는 나타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IB는 이미 금융회사에서 IT회사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이다.

위기는 곧 기회일 수 있다. 세계 최대의 IT 사용자를 보유한 중국과 인접해 있고, 세계 최고의 IT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는 한국이야 말로 IT 기반의 글로벌 IB가 출현할 수 있는 좋은 토양을 가졌다. 이제는 금융회사 스스로가 IT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할 때다. 머지않아 한국에서 골드만삭스, JP모건을 능가할 IT 기반의 글로벌 IB가 탄생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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