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적자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저성장 고착화, 복지예산 폭증으로 확장 재정이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는 게 문제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연차 총회에 참석차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한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8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나 "재정정책은 쓸 만큼 다 썼고, 더 화끈하게 (재정을 확대)하기에는 재정 적자를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정적 여력이 있는 한국이 이를 써야 한다는 국제통화기금(IMF) 입장과는 다른 것이다. 유 부총리 말대로 실탄을 있는 대로 쏟아부었지만, 경기는 좀처럼 회복궤도에 올라서지 못하고 있다.

경기 하강 국면에 재정으로 이를 모면하는 땜질 처방이 잇따르면서 재정 의존 체질이 만성화하고 있다. 내년 국가 채무는 682조원으로 박근혜 정부 출범 전해인 2012년 말보다 236조원(53%)이나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 투자 활력을 높이고, 신성장동력 산업에 피가 돌게 해야 국채 발행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에서 탈피할 수 있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이 낮은 나라로 꼽히지만, 그렇다고 태연하게 혈세를 낭비해선 안 된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포퓰리즘 정책 경쟁이 기승을 부릴 것이 뻔하다. 국가 채무는 위험 경계 수위를 넘나들 것이고, 이는 고스란히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전가된다. 재정을 써야할 곳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지진에 이어 태풍 '차바'로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내수 위축 우려, 물류 대란이 동시에 한국경제를 덮치고 있다. 한진해운 사태가 제대로 수습되지도 않았고, 철도노조 파업도 이어지고 있다. 10일 화물연대 파업까지 벌어지면서 국내 물류 대동맥인 육·해상 물류시스템이 다 막히게 생겼다.

경제 초비상 상황이지만, 추가 재정 투입 여력은 물론 이를 이겨낼 국가의 체력도 극도로 약화됐다. 재정 조기집행과 개별소비세 인하 등의 약발이 떨어지자 소비절벽이 형성된 것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현대자동차 파업 여파로 8월 제조업 가동률이 7년여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재정 확장 정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한 채 부동산 이상 과열이 빚어지고 있다. 2006년 부동산 광풍을 연상케 할 정도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가계 부채 위험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13일 열릴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더 이상 내리기도 어렵다.

재정 투입이나 금리 인하만이 능사가 아니다. 4차 산업 혁명시대와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한국 경제 활력을 제고하기 위해선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안' 및 '규제프리존 특별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 구조 개혁을 해야 경제에 새살이 돋아난다는 것은 두말한 나위가 없다. 레임덕 증후군이 겹치면서, 노동·금융· 공공· 교육 등 4대 구조개혁의 총대를 메려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경제 활력 법안은 이번 정부에서 물 건너갔다고 보는 경제전문가도 적지 않다. 아예 경제· 구조 개혁을 포기한 것인가. 재정 악화를 돌파하기 위한 해답은 이미 나와 있다. 4.13 총선 직후에 형성됐던 여야 협치 정신을 되살려내고, 구조 개혁으로 경기 침체 국면을 정면돌파해야 한다. 이젠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식의 재정투입과 재정· 금리 의존 체질부터 벗어던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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