펩타이드 활용한 신약 개발에 집중
남양주 공장선 다양한 제네릭 생산
오랜 연구 지탱하는 자체체력 갖춰
"노바티스 같은 기업 하나만 나와도
미래의 새로운 먹거리 될수 있어"
제약사들도 기술상업화 지원 기여
'제2 한미약품' 발굴 100억 출자도

씨트리 연구원들이 같은 성분으로 만들어진 두가지 제제의 의약품이 체내에서 같은 효능을 보이는지 테스트를 하고 있다.  김민수기자 ultrartist@
씨트리 연구원들이 같은 성분으로 만들어진 두가지 제제의 의약품이 체내에서 같은 효능을 보이는지 테스트를 하고 있다. 김민수기자 ultrartist@


■ 바이오헬스 '글로벌 퀀텀점프기' 열어라
(6) 잘 만든 '바이오벤처' 국가 성장동력으로



최근 방문한 경기 남양주 씨트리 본사 펩타이드연구실과 제제연구실에서는 새로운 펩타이드 의약품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합성의약품 생산시설은 풀가동되고 있었다. 고속액체크로마토그래피(HPLC) 기기 등으로 정제한 고순도 펩타이드는 동결건조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 1㎏에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펩타이드 의약품의 원료가 된다. 씨트리는 설비규모가 더 큰 춘천에서는 선진국 제조기준에 맞춰 주사제까지 한 번에 제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계획이다.

앞서 씨트리는 희귀질환인 척수소뇌변성증 치료제 '씨트렐린'을 국내 1호로 개발한 데 이어 올해 치매증상 치료제 엑셀씨캡슐을 출시했다. 지난 5월에는 약물전달시스템(DDS) 전문기업인 핀란드 바이오기업 델시테크(Delsi Tech)와 공동연구 협약을 맺고, 펩타이드 기술을 접목해 기존 항암제의 단점을 극복하는 신개념 항암제 'CT-007' 개발에 착수했다. ◇ 오랜 신약투자 견딜 자체 체력 확보= 씨트리는 오랜 세월 제약연구에 몸담은 김완주 회장이 설립한 1세대 바이오벤처다. 한국화학연구원 국책연구사업단장, 한미정밀화학 대표, 한미약품 부사장 등을 역임한 김 회장은 한 대학 교수직을 제의받았지만 뿌리치고 1998년 58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씨트리를 창업했다.

김완주 씨트리 회장 씨트리 제공
김완주 씨트리 회장 씨트리 제공


창업 후 18년이 지난 76세의 그는 지금도 "창업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이라며 "국제 경쟁력을 갖추고 오랜 기간 대중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기업을 만들고 싶었고, 지금도 그 꿈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씨트리는 펩타이드를 활용한 신약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아미노산의 집합체인 펩타이드는 생체신호 전달 및 기능 조절에 관여하는 물질로, 적은 양으로도 효과는 좋고 독성이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단백질 전체를 사용하는 단백질의약품보다 생산성이 높은 중간 규모 화합물이기 때문에, 생산 비용은 비교적 낮으면서 개발에 성공하면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1999년 12월 어느 날 아침 신문기사에서 독일 바이엘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국내 생산시설을 매각한다는 내용을 접한 김 회장은 바이엘 사장실로 전화를 걸어 "시설을 인수하겠다"고 말했다. 인수는 일사천리로 진행돼 2000년 1월 1일 씨트리가 지금의 경기 남양주 경강로에 들어섰고, 바이엘의 제품 4개를 인수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의약품제조 및 품질관리기준(GMP) 시설 인증도 받았다. 연구소 형태로 시작한 바이오벤처 씨트리가 제약사로서 합성의약품 생산능력도 갖추게 된 것이다. 김 회장은 "이것이 씨트리 성장에 가장 중요한 성공 포인트였다"고 밝혔다.

연구소가 핵심인 바이오벤처는 막대한 연구비 투자 때문에 적자를 볼 수밖에 없고, 혁신신약 개발은 10년 이상 긴 시간이 필요한데 투자자들은 이를 기다려주기 힘들다. 때문에 씨트리는 바이엘로부터 인수한 남양주 공장을 통해 다양한 제네릭(복제의약품)을 생산·판매하고, 다른 제약사의 제품 생산 대행을 병행하면서 오랜 투자에도 견딜 수 있는 '자체 체력'을 갖췄다.

의약품 생산으로 얻는 연간 약 200억원의 매출은 대부분은 지난해 강원도 춘천의 3000㎡ 대지에 완공한 바이오 공장을 짓는데 투자했다.

김 회장은 "수익성 위주의 남양주 공장과 미래 지향적인 춘천공장을 운영하며 투트랙 전략을 펼치고 있다"며 "대규모 적자를 유지하면 기업이 지속할 수 없기 때문에 바이오벤처도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사업모델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글로벌 펩타이드 의약품 시장 규모는 2008년 116억달러에서 2013년까지 연평균 성장률 8.9%로 성장했고, 지난해 211억달러 규모에 달했다. 일반적인 의약품시장 성장률이 2~3%인 것을 고려할 때 훨씬 높은 성장세다. 세계적으로 약 100종의 펩타이드 의약품이 판매되고 있고,, 지난해 기준으로 이스라엘 테바의 '코팍손'이 매출 4조6000억원, 덴마크 노보노디스크의 '빅토자'가 3조원 규모의 매출을 올렸다. 씨트리도 다국적 제약사들과 세계 무대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며 경쟁할 혁신적인 펩타이드 의약품을 개발하는 게 목표다.

김 회장은 "국내에는 현재 400여 개 제약사가 있지만, 아직 국내 시장에 머물러 있는 단계"라며 "세계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원천기술을 갖고 독자 신약을 개발해야 한다. 그 역할을 씨트리가 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앞으로 춘천에서 생산되는 바이오신약들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에 씨트리가 진출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300여개 바이오벤처 '미래 투자중'= 국내 바이오벤처는 2014년 바이오협회 집계로 약 329곳으로 추산된다. 국내에 바이오벤처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지난 1992년 한국생공(현 바이오니아)이 설립됐을 때다. 이듬해 정부가 발표한 '제1차 생명공학육성 기본계획'에 이어 1997년 제정된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등 지원정책에 힘입어 벤처 창업이 점차 고개를 들었고, 1996년 코스닥 시장이 개장되면서 벤처기업이 연구개발 및 사업운영 자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정부의 중기벤처 육성정책과 벤처캐피털 투자에 힘입어 2000년 224곳의 바이오벤처가 설립됐다. 그러나 2002년 나스닥 버블 붕괴와 투자환경 악화로 벤처 붐이 가라앉으면서 지난 2013년 설립된 바이오벤처는 단 2곳에 그치는 등 침체기를 겪었다. 그러나 바이오벤처들은 기술성 평가제도가 도입되고 우회상장 등 시장규제가 완화되며 숨통이 트였고, 오랜 투자를 해온 곳들이 본격적인 성과를 내면서 가능성을 현실로 바꿔놓았다.

한국거래소의 1기 기술특례로 상장한 바이오니아, 바이로메드, 크리스탈지노믹스는 특히 올해 들어 대규모 기술수출을 성사시키는 등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산업 전체의 측면에서 이들 바이오벤처는 과학과 산업을 연결짓는 다리 역할을 한다. 미국 보스턴의 바이오벤처 콘스텔레이션 파마슈티컬스의 키스디온 CEO는 한 인터뷰에서 "대학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하지만 그것을 사업화로 연결시키는 데 약하고, 제약사는 검증된 약물의 임상 개발에는 강하지만 초기 단계 연구 발굴에는 약하다"면서 "바이오벤처는 이 틈을 메우는 조직적인 메커니즘"이라고 말했다.

김완주 회장은 "우리나라에 스위스 노바티스 같은 기업이 하나만 나와도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다"면서 "앞으로 특색있는 기술을 가진 바이오벤처가 나타나야 하고, 이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씨트리도 새로운 스타트업 지원을 위해 이달 초 바이오협회와 MOU를 맺었다.

◇ 제약사-바이오벤처, 미래를 위한 협력= 주요 제약사들도 바이오벤처가 개발한 기술의 상업화를 지원하며 생태계 조성에 기여하고 있다. 지난해 기술수출로 큰 성과를 거둔 한미약품은 '제2의 한미약품'을 발굴하기 위해 100억원을 출자해 '한미벤처스'를 설립했다. 유한양행은 테라젠이텍스에 지분투자를 하고 유전체분석 서비스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제노스코, 바이오니아, 제넥신 등 바이오벤처와 기술이전 및 지분투자 계약을 맺기도 했다. CJ헬스케어는 지난 5월 바이오벤처 ANRT와 이중타깃항체 치료제 공동개발 협약을 맺었고, 일동제약은 셀리버리와 3월부터 파킨슨병 치료제를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다. JW중외제약은 일본 쥬가이제약과 합작해 바이오벤처 C&C신약연구소를 설립, 항암제를 개발하고 있다.

정부도 바이오벤처 육성을 위해 팔을 걷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바이오헬스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바이오창조경제 10대 활성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바이오헬스 분야 창업과 성장, 투자회수에 이르는 전방위 지원과 민·관협력에 기반한 오픈 이노베이션을 활성화해 기술과 인력, 자금이 선순환하는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게 목표다.

보건복지부는 바이오헬스 전 분야를 아우르는 '보건산업 종합발전전략'을 최근 확정했다. 내년까지 지식재산·제품화 컨설팅, 기술평가 등 전주기를 진행하는 '바이오헬스 비즈니스 코어센터'를 설치하고, 기술협력을 지원해 의료인 창업을 활성화하는 것이 골자다. 특히 기술거래 활성화와 벤처기업 출구전략 다양화를 위해 보건의료기술이전 전담조직을 올해 53개에서 2020년까지 100개 수준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중소기업청은 최근 정부 출자금 300억원에 민간 자금을 더해 총 750억원 규모의 바이오헬스케어 육성 펀드를 조성키로 했고, 앞서 산업통상자원부도 정부 출자 100억원에 민간 자금을 유치해 300억원 규모 바이오펀드를 조성, 초기 벤처에 대한 투자를 의무화했다.

김지섭기자 cloud5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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