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환경 안전성 논란 무의미
식량문제 극복 등 인류에 도움


유전자변형식품(GMO)의 표시 제도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GMO 원료의 사용 여부를 모두 밝히자는 '완전 표시제'와 변형된 유전자(DNA)나 단백질이 남아있는 경우에만 표시하자는 '제한적 표시제'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GMO가 인체와 환경에 안전하다는 과학자와 정부의 주장에는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원가 상승과 소비계층의 양극화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걱정하는 식약처의 모습도 볼썽 사납다.

GMO의 인체·환경 안전성에 대한 더 이상의 우려와 논란은 무의미한 것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GMO의 위해 가능성에 대한 과학적 결론은 분명했다. 현대 과학으로 확인할 수 있는 범위에서 GMO는 전통적인 육종 기술로 개발한 농작물과 크게 다를 것이 없고, 따라서 안전성을 의심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 108명과 미국 과학원도 같은 입장을 밝혔다. 오히려 GMO가 미래의 식량 문제 해결에 꼭 필요하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과학적·합리적 결론을 폄하하는 음모론과 억지에 신경을 쓸 이유는 없다. 현실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는 위험을 걱정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사전예방의 원칙'도 적절하고 합리적인 수준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식품의 위해성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나 완벽하게 안전하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과학적인 방법도 없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마찬가지다.

20억이 넘는 인구가 절대 기아에 허덕이는 현실에서 안전성에 대한 맹목적이고 과도한 요구는 이기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유전자 변형이 새로운 것도 아니다. 우리가 재배하는 농작물과 사육하는 가축의 유전자는 모두 변형된 것이다. 실제로 인류 문명의 역사는 1만2000년 전에 '육종'이라는 유전자 변형 기술의 개발 덕분에 시작된 것이었다. 전통적인 육종 기술로 개발된 농축산물의 안전성도 과학과 경험의 한계 안에서 입증된 것이다. 단순히 전통적으로 오랜 세월 동안 소비해왔다는 사실이 완벽한 안전성을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다. 대표적인 전통 식품인 술과 젓갈도 사실을 인체 발암성이 확인된 1군 발암물질이다.

그렇다고 GMO에 대한 소비자의 거부감을 탓할 수는 없다. 무작정 과학자와 정부를 믿으라는 요구는 부당한 것이다. 오히려 과학자와 정부가 소비자들에게 충분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심각하고 부끄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GMO의 정체를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소비자를 설득시키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부도 기업이 아니라 소비자의 입장에서 정책을 마련하고 시행해야 한다.현대 사회에서 소비자는 충분한 정보를 근거로 스스로 선택하기를 원한다. GMO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더욱이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GMO의 양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작년에 수입한 쌀·보리·밀·콩·옥수수 등의 곡물 1800만 톤 중 절반이 넘는 1000만 톤이 GMO였고, 그 중 215만 톤이 가공식품의 원료로 소비됐다. 가공식품에 사용되는 수입산 재료의 80% 이상이 GMO이고, 식용 콩기름의 94%가 GMO로 생산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GMO 사용 여부를 분명하게 밝혀달라는 소비자의 요구는 당연한 것이다.

알 권리를 강조하는 소비자의 요구가 반드시 과학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고 볼 이유는 없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성분과 원산지 표시제도 안전에 대한 불신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완전 표시제를 거부하는 정부와 과학자들이 오히려 소비자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GMO가 안전하다면 소비의 양극화에 의한 사회적 갈등은 걱정할 이유가 없다. 변형된 유전자와 단백질이 남아있지 않은 제품에 대한 별도의 표시를 개발하는 일도 어렵지 않다.

생명과학은 지금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유전자 가위'(CRISPR)와 같은 새로운 유전자 편집 기술도 빠르게 개발되고 있다. 더 효율적인 식량 생산 기술이 절박한 상황에서 GMO의 표시제에 대한 소모적인 논란은 빨리 정리해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 원장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