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1950년 6.25 전쟁 이후 짧은 시간에 고도 성장을 이룩해왔다. 2011년에는 세계에서 9번째로 연간 무역규모 1조달러를 달성했으며 2012년에는 세계에서 7번째로 20-50 클럽(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인구 5000만명 이상인 국가)에 가입하는 등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이 한층 높아졌다. 우리나라 대외무역 의존도는 90% 이상이다. 우리의 수출 상대국인 미국, 중국, 일본의 무역의존도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무역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크다.
국가간 무역은 대부분 자유화가 되었지만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의 규제는 지속되고 있다. 특히 2001년 9.11 테러 이후 국제사회의 전략물자 수출통제가 점차 강화됐고 2004년도에는 UN안보리결의 1540호를 통해 전 UN회원국의 의무가 됐다. UN안보리는 최근 북한의 제5차 핵실험에 대해 더 강력한 제재를 예고하는 등 국민의 안전과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도발을 강력하게 제재하고 있다.
무역에 관한 여러 규정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대부분 잘 알지 못해 간과하는 규정이 전략물자 수출관리다. 미국, 일본, 유럽 국가들은 일찍이 전략물자 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무역에 관한 중요한 제도로 정착시켜 왔다. 미국은 상무부, 국무부 등 여러 부처가 전략물자 관리를 담당하고 있고 대부분의 기업은 자율준수를 기업의 의무로 간주하고 철저한 내부 통제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은 경제산업성에서 수출허가를 총괄하고 수출 관련 규정에 전략물자 여부 확인, 자율준수 등을 의무화하는 등 강력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80년대 불법수출로 처벌된 도시바 사례 등을 겪은 바 있어 경영진 등의 전략물자에 관한 인식이 매우 강하다. 독일, 영국 등 주요 유럽 국가들도 미국, 일본 등과 마찬가지로 수출통제를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
전략물자라 하면 방산물자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전략물자는 그 용어의 느낌과 달리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나 기계류, 전자기기 등으로서 대량살상무기 등의 제조에 사용되는 물품이나 기술 등을 일컫는다. 예를 들면 공작기계가 미사일 동체를 생산하는데 쓰일 수 있고, 샴푸를 제조하는 데 사용되는 화학물질인 트리에탄올아민은 화학 무기 개발에, 통신에 사용되는 라우터는 군용 통신에도 사용될 수 있다. 이러한 전략물자는 국제사회가 약 1400여종을 지정해 관리한다. 전략물자 수출관리는 바로 이러한 품목들의 수출을 관리하는 제도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대외무역법에 근거해 전략물자 관리를 이행하고 기업들의 자율관리를 확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더불어 아시아 지역의 유일한 4대 국제수출통제체제의 회원국으로서 선진적인 제도를 구축하고 있다.
국제수출통제 제도 이행을 위한 제도적 기반은 구축되어 있지만 아직 산업계, 학계, 연구기관의 전략물자 수출이나 이전에 대한 인식 및 이행 노력은 다소 부족하다. 자율준수기업이 158개가 지정되어 있고 주요 무역기업 및 대기업을 중심으로 자율준수 체제 도입이 확대되고 있지만 전략물자 관리는 제조, 무역, 운송에 관여하는 기업 모두가 이행해야 하는 제도다. 전략물자 수출관리는 기업의 선택이 아닌 의무다. 그러나 아직까지 단순한 선택사항으로 이해하고 수출하다가 불법수출로 적발되는 기업들도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
세계 주요 다국적 기업들은 자발적인 전략물자 관리 및 제도 확산을 위해 2015년 11월 독일 비스바덴에서 소위 보티첼리 프로젝트라는 협의체를 구성하고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보티첼리 프로젝트의 대표는 이달 27일 방한해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최하는 무역안보의날 행사에 참석해 보티첼리의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참여를 권유할 예정이다.
우리나라는 무역대국이다. 단지 구호만이 아닌 실제 무역대국으로서 도덕 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을 가져야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신뢰도가 높아지고 지속 가능한 수출 확대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 북핵의 핵 실험 등 한반도의 긴장감이 높아지는 상황 속에서 국가, 기업, 국민 모두가 무역 안보에 관심을 갖고 협력해야 한다.
국민의 무역안보에 대한 의식을 높이기 위해 매년 개최되고 있는 무역안보의 날 행사가 금년도에 UN안보리결의 1540호의 이행 제고를 위한 산업계 아웃리치 콘퍼런스와 병행 개최된다. 더 효율적인 전략물자 관리 방안 논의를 위해 판정세미나도 개최된다. 이를 통해 국내외 전문가의 지혜와 경험을 모아 효과적인 무역안보를 위한 대안이 제시되기를 바란다.
전략물자 관리가 기업에게는 다소 불편한 절차로 인식되고 있지만 국제사회에서의 위치, 장기적 이익 확보라는 관점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노블레스 오블리제라는 인식을 갖고 자율적으로 준수해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