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성 금융증권부 기자
강은성 금융증권부 기자


그런 사람이 있다. 그냥 회사일인데, 마치 제 일인 양 몸이 부서져라 하는 사람 말이다. 한편에는 '그건 내 일 아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도 있다. 책임회피는 그의 신념이고 무사안일은 인생 좌우명이다. 일각에서는 '어차피 같은 월급 받는데, 열심히 일하는 것 보다 책임질 일 안 하는 게 최고'라는 말까지 나온다.

금융권 성과연봉제는 이런 분위기를 타파하자고 나온 얘기다. 노사를 막론하고 연공서열 호봉제 아래 무임승차 직원이 늘고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일부 은행은 노조가 2~3년 중기 계획으로 호봉체계 문제점과 성과주의 도입에 대한 단계적 방안 마련을 위해 태스크포스를 구성한 곳도 있었다. 지난해까지 얘기다.

올 들어 상황은 급변했다. 연초부터 금융당국 수장인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거친 개혁' 카드를 꺼내 들었다. 임 위원장이 국책은행 및 금융 공기관장을 소집해 '성과주의 문화 확산'을 위한 MOU를 체결한 후 이들 기관은 임금단체협상 창구인 사용자협의회를 탈퇴해버리고 이사회 의결만으로 성과연봉제를 가결시켰다. '필요성은 인정한다'던 노조는 '협상이나 합의는 절대 없다'며 강경노선으로 돌아섰고 총파업 예고와 함께 사측을 고발했다.

이제 민간은행도 같은 수순을 밟으면서 노사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예고된 총파업을 이틀 앞두고 임 위원장은 민간 은행장들을 또다시 불러 '파업에 참여하려는 직원은 은행장이 직접 설득하고, 파업에 나설 경우 급여를 삭감하라'고 주문했다.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다. '밥그릇 지키기' 파업으로 명분을 얻지 못했던 노조에게 '관치 척결'이라는 대의명분을 오히려 허용해버린 형국이다.

왜 이리 서둘러야만 하는가. 저금리, 저성장,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국내 금융사의 위기는 이미 현실로 다가왔다. 성과연봉제를 통해 그 난관을 헤쳐나가려 했다면 연봉제를 통해 일 잘하는 직원을 격려하고, 그렇지 못한 직원에게 '열심'을 낼 수 있는 당근책이 되어야 한다. 성과연봉제만 도입해 놓고 노사가 갈래갈래 찢어져 감정 대립을 일삼는다면 없던 위기도 더 크게 다가올 판이다.

금융당국 수장이 나서서 노조를 자극할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아쉬움도 이 때문에 든다. 성과주의 확산이 금융회사의 혁신과 위기 극복을 위한 것인지, 그저 '연봉제'를 도입했다는 어떤 '치적'을 남기고 싶은 것인지, 본말이 전도됐다는 느낌을 주면 안된다.

강은성기자 esther@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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