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함 전 연세대 교수·정치학
양승함 전 연세대 교수·정치학
양승함 전 연세대 교수·정치학


국가의 위기관리 능력에 따라서 국민 생활의 안전과 국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좌우된다. 돌발적인 자연 재해는 예방이 쉽지 않으나 사전 사후 대책을 철저히 준비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다. 한편 정치, 경제, 사회분야의 위기는 그 전조가 상당기간 전개됨으로 예방이 가능하기도 하며 설사 위기가 오더라도 사후 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대비책을 마련할 수 있다. 국가의 통치리더십은 왕왕 위기관리 능력에 의해 평가 받으며 반복적인 위기관리의 실패는 정부가 석화(petrified) 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의 석화란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고 사후약방문격 대응만을 일삼는 것을 의미한다. 관료조직의 병폐가 만연된 정부하에서 석화현상이 일어난다. 사건 사고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이 없으며 위기 대응을 지휘할 컨트롤 타워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임기응변적 조치만이 있을 뿐이다. 지도자가 아무리 근면성실하게 일해도 이미 동맥경화증에 걸린 시스템은 움직이지 않는다.

한진해운의 파산에 따른 물류대란을 보면서 우리 정부가 석화된 것이 아닌가 심히 우려된다. 정부는 해운업의 구조조정 노력에 7년전부터 나섰지만 미온적 대책만이 제시되었을뿐 허송세월을 한 꼴이 되었다. 막상 한진해운이 파산위기에 처하자 금융위원회는 법정관리를 결정했고 5일 현재 24개국 44개항만에서 73척(한진 소유의 3분의 2)의 배가 묶이게 되었다. 우리의 수출입 무역은 물론 세계적으로 물류혼란을 일으켰고 정부는 법정관리 6일이 지나서야 뒤늦게 범 정부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한진해운 사태는 무책임한 대주주와 무능한 정부에 의해서 악화되었다. 한진그룹은 계열사의 파산위기에 대해 무성의하게 대처했으며 정부는 구조조정의 원칙을 고수하는데 급급했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젖줄과도 같은 바다운송길은 국가경제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대부부분의 해운 전문가들은 국익차원에서 한진해운을 살려줄 것을 권고했으나 금융위원회는 알량한 원칙 고수로 위기를 증폭시켰다.

더욱 큰 문제는 구조조정 이후에 나타날 파급효과에 대해서 인일하게 대처한 것이다. 해양수산부가 한진해운으로부터 운항중인 선박과 화물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넘겨 받은 것은 법정관리를 신청한지 사흘이 지나서였다. 해수부는 산업기반 붕괴를 우려해 추가지원을 주장한 반면 금융당국은 구조조정의 원칙을 강조해 위기관리에서 엇박자를 내었다. 이와 같은 부처간의 이견을 조율해야할 기획재정부는 서별관회의 국회청문회를 앞두고 정치적 추궁을 의식해 콘트롤 타워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위기관리를 위한 콘트롤 타워의 부재 현상은 이미 세월호, 메르스 위기 때에도 있었다. 그때에도 위기에 대한 사전예방은 물론 없었고 사후대책도 졸렬하기만 했다. 그리고 책임지는 사람도 위기관리직 수준에서는 아무도 없었다. 또다른 위기들이 다가오고 있지만 정부의 대책을 보면 과연 실효가 있을는지 의구심이 돈다. 가계부채는 6월 현재 1257조이며 최근 급증해 이미 폭탄 수준에 이르렀다. 정부는 알맹이 없는 대책만을 내놓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사드배치 결정은 국민안전을 위해 필수적 조치라고 하지만 북한은 이미 잠수함핵미사일(SLBM)을 개발해 안보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 현재 사드는 북방만을 향하여 방어하는데 비해 북한의 SLBM은 동. 남. 서해에서 공격할 수 있다. 국방부는 왜 북한의 SLBM에 대한 대비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석화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윤활유를 투입하는 것이 우선적이다. 그 윤활유는 탕평인사와 책임인사이다. 인사에 활력을 넣어야 시스템이 작동하게 될 것이다. 소위 청피아, 관피아와 같은 낙하산 인사나 방패인사로는 석화현상을 막을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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