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가 위협받는 시대다. 지난 6월 영국은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했다. 그들은 유럽이라는 '공동체'로부터 분리되기를 선택한 것이다. 공동체의 위기를 먼 유럽의 예에서 찾을 것도 없다. 우리 사회에도 '공동체'의 의미자체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지옥'이라 호칭되고 그 지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개별적으로 탈출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다. 우리 공동체 내에서 더 나은 삶의 구축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 공동체를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이미 자기 자신을, 혹은 그들의 가족을 이 공동체 외부에 위치 짓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너는 지옥의 밖에 있고, 나는 지옥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공동체'라는 한자어는 '복수가 단수를 이루는 몸'이라는 뜻을 갖는다. 그러나 그것을 실체가 있는 유기체로서의 '몸'으로 규정할 때, 그 몸은 훼손되기 쉽다. 유럽연합이라는 몸으로부터 중요한 일부분이 잘려져 나가고 몸은 완전하지 못한 몸이 되어 버린다. 공동체의 영어 해당어인 '커뮤니티'라는 단어의 기본 뜻은 '함께 있음'이다. 사실상 함께 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그 결합이 초래하는 '하나'라는 단위 보다, 그 전제로서 요구되는 '타자'의 존재이다. 커뮤니티와 어원적으로 같은 '커뮤니케이션'이 '의사소통'을 의미하듯이, 공동체가 있기 위해서는 나와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타자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타자는 나에게 동의하는 또 다른 내가 아니라, 나의 불완전성 때문에 나에게 이의제기를 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동질성이 아니라 이질성이 커뮤니티의 기초인 것이다. 동향인과 이방인이 함께 있는 것이 공동체이다.
영국인들이, 특히 잉글랜드의 영국인들이 자신들의 공동체를 위하여 유럽이라는 공동체를 탈퇴할 때, 그들의 공동체는 타자를 제거하는 공동체이므로 커뮤니티라기 보다는 '동향인의 집단'으로 정의할 수 있다. 동질성으로 가득 찬 집단은 '하나의 몸'을 이루며, 그 몸이 유럽이라는 이질적인 몸을 만나기 전에 예전에 완전한 상태에 있었으며, 또 미래에 더 나은 모습을 가질 것이라는 약속을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약속으로서의 공동체의 모습이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과거 언제가 있었지만 상실하고만 찬란하고 위대했던 공동체의 역사를 복원하는 미래에 대한 약속. '선진국'이라는 이름으로, '만불소득', '2만불소득', '올림픽', '3만불 소득', '통일' 등등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이 약속의 시기는 늘 유예된다. 그리고 그 유예된 약속의 실현을 위해 '우리'의 일부를 이루는 개별자들은 다른 목소리를 내서는 안된다. 현재의 사회가 '사람으로서 살만한 곳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금기가 된다. 그러나 정작 잊어서는 안되는 것은 공동체라는 것은 이야기 속에서 탄생한다는 점이다.
공동체는 하나의 얼굴, 하나의 목소리를 지닌 단일한 목적의 집단이 아니다. 공동체는 타인과 함께 하는 것이고, 결코 하나가 되지 않는 이견들, 이견들의 한계 지점에서 벌어진 틈과 마주하는 자리이다. 철학자 장 뤽 낭시는 공동체의 이와 같은 특성을 고려하여 공동체를 '마주한 공동체'라 부른다. 공동체 안에 있는 이 수많은 다른 목소리들 때문에 또 다른 철학자 모리스 블랑쇼는 '밝힐 수 없는 공동체'라 부른다. '우리'로서 실체를 차마 말할 수 없는, 개별성들의 한계 속에서, 말해 질 수 없는 것 속에 있는 공동체를 그는 지시하고 있다.
결국 공동체란 그것이 무엇이라 정의할 수 없는 수 많은 타자들, 개별자들의 이야기가 자신들의 한계 너머에서 '함께 존재하는' 사건이다. 달성해야 하는 과업이 아닌 어떤 목표가 없는 것으로서의 공동체이며 이를 낭시는 다시 '무위의 공동체'라 부른다. 구체적인 목표, 미래의 약속, 초월적 과제가 없는 공동체라고 해서 허무주의에 기초하는 개념은 아니다.
차라리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는 공동체가 허상 위에 근거하기 때문에 허무적이다. 하나의 몸이 누리는 번영의 신화, 그것은 가짜 신화이다. 진정한 신화는 공동체의 기원과 그 갈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옥에 대해서 말하는 것, 지옥이 아닌 것에 대해 말하는 것, 내가 지옥을 겪는 방식에 대해서, 그리고 나와 마주한 타자가 겪는 지옥이 아닌 것에 대해 말하는 것, 이 모든 소란스러운 술렁거림 속에서 공동체라는 '우리'는 '나'에게 도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