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폭염의 불똥이 엉뚱하게 번지고 있다. 전력 수요의 13.6%에 불과한 가정용에만 적용되는 징벌적 누진제에 대한 불만이 마구 터져 나오고 있다. 자칫하면 폭염보다 더 끔찍한 전기요금 폭탄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여름에만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는 겨울철의 전기요금 폭탄은 노인과 저소득층의 목숨을 위협한다. 모처럼 정치권이 관심을 보였지만 이번에도 소비자가 원하는 해결책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1974년 3단계 1.7배로 시작된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는 석유파동을 극복하기 위한 극약 처방이었다. 2차 석유파동이 시작되던 1979년에는 누진율을 20배로 강화했다. 경제와 전력 사정이 개선되었던 1990년대가 살인적인 누진제 개선을 위한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전력산업 개편에 정신이 팔려버렸던 정부는 요금 폭탄 문제를 애써 외면해버렸다. 과도한 유류세로 전기 냉방·난방이 일반화되면서 전기요금 폭탄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은 더욱 심각해졌다. 현재의 6단계 11.7배의 누진제는 그런 소비자를 달래기 위해 2007년 정부가 마지못해 내놓은 개선책이었다.
누진제는 반드시 완화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저소득층에게 추가로 부담을 주지도 않고, 고소득층에게 추가로 혜택이 돌아가지도 않도록 해주는 기적의 누진제 완화 방법은 없다. '부자 감세'와 '저소득층 부담 증가'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해야 한다. 전기요금이 부의 사회 환원과 복지를 달성하는 정책 수단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블랙아웃에 대한 확실한 대책도 필요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평균' 전력소비량이 아니라 여름·겨울철의 피크타임이 문제다. 대형 발전소에 예상치 않은 문제가 생기거나 전력 수요가 조금만 늘어나면 당장에라도 블랙아웃이 발생할 수 있다. 가정용의 증가는 괜찮다는 주장은 무책임한 것이다. 피크타임의 전력 수요를 억제할 수 있는 확실한 대안이 없으면 누진제 완화는 정말 위험한 선택이 된다. 경기가 살아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단순히 가정용 누진제만 손볼 일도 아니다. 복지·산업·환경·교육 정책이 뒤섞여서 누더기가 돼버린 전기요금 체계를 획기적으로 단순화시켜야 한다. 전기요금은 순수하게 전력의 생산과 송전, 그리고 미래의 전력 인프라 투자에 필요한 비용만을 근거로 책정되어야 한다. 한전이 전기요금으로 모든 사회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는 일이다.
전기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바꿔야 한다. 소비자에게는 전기가 편리하고 안전한 에너지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력의 생산 과정은 전혀 다르다. 원전은 사고의 위험을 감당하기 어렵고, 화력은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때문에 문제가 된다. 태양광과 풍력은 여전히 그림의 떡이다. 안전과 환경을 포기할 수 없다면 최고급 에너지인 전기의 소비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전기를 펑펑 쓰면서 안전과 환경을 지키겠다는 꿈은 비현실적이다.
결국 전기는 다른 대안이 없는 경우에만 사용해야 한다. 냉방과 난방을 전기에만 의존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천연가스(LNG)를 이용한 냉방과 화석연료를 이용한 난방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농사용 비닐하우스나 소금 건조에 전기를 사용하는 것은 지극히 비정상적인 일이다. 화석연료를 이용한 발전의 열효율은 30%를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산업용과 일반용 전기요금도 현실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대량 소비자에게 할인을 해주는 일반 원칙은 전기요금에도 적용된다. 기술적인 면에서 산업용 전기 공급에 비용이 적게 드는 것도 사실이다. 저렴한 전기요금으로 얻어지는 산업경쟁력도 무시할 수 없다.
전기의 불필요한 낭비에 대한 법적·제도적·사회적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소비자들도 직접 나서서 불매운동이라도 펼쳐야 한다. 최고급 에너지인 전기의 낭비는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사회악이다. 전기 소비 증가를 부추기는 과도하고 불합리한 유류세도 확실하게 뜯어고쳐야 한다. 정부가 소비자의 연료 선택권을 제한하는 권위주의 시대의 낡은 에너지 정책은 반드시 폐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