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라고 알려졌지만, 주변에선 그를 '버릇없는 아이(Spoiled Child )'라고 불렀다. 먼저 함께하자고 한 건 그였다. 공동체 속에서 그는 온갖 제 편한 일들만 요구하기 시작했다. 제 마음대로 돈을 쓰고, 제 내키는 대로 골라 친구를 사귀더니, 이제 공동체를 떠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해 버렸다. 동거인들이 그를 '스포일드 차일드'로 부를 만 하다.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겠다는 국민투표를 실시한 이후 설마 했던 '탈퇴 결정'이 현실이 돼 버렸다.
투표 이후 영국 국민들은 '리그렉시트(Regrexit) ' 즉, 브렉시트를 후회한다며 재투표를 요구하고 있다. 이미 400만명이 넘는 영국인이 재투표 요구에 서명했으며, 수도 런던의 중심지 트라팔가 광장에는 연일 '나는 EU인'이라고 쓴 팻말을 들고 많은 영국인들이 시위 중이다.
이들은 이른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역대 최고 수준의 투표율을 기록할 만큼 스스로 투표장을 찾았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리그렉시트 분위기를 보면 마치 부정투표라도 있었던 모양새다. 누가 이 사태를 만들었는가, 그리고 제물을 찾는다. 사태 촉발자, 브렉시트 유발자를 향해 마녀사냥을 시작했다. 캐머런 총리 사퇴 후에도 당분간 영국은 시끄러울 것 같다.
EU는 '경제 공동체'의 가장 진화한 형태다. 역외 관세정책까지 공유하는 높은 수준의 관세 협력은 물론 화폐를 통일하고 자본, 서비스, 노동력까지 교환한다. 나라는 다르지만 EU라는 공동체 아래 마치 한나라처럼 교류한다.
영국이 EU를 떠나면 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 특히 세계 금융의 중심지였던 런던은 27개 유럽 국가와의 자본거래에서 막대한 금융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영국은 더 이상 'EU 동일인 원칙'의 적용을 받을 수 없다. 동일인 원칙이란 은행이나 금융회사가 EU 내 국가에 법인 설립이나 인가를 받은 경우 타 EU 국가에서도 자유럽게 지점을 개설할 수 있는 제도다. 런던이 세계 금융허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제도 덕분이다.
영국의 금융부문 자산은 GDP의 8.3배이며 금융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EU 평균보다 50% 많은 8%에 달한다. 그리고 영국이 EU로 수출하는 서비스의 3분의 1은 금융서비스다.
영국이 EU와 결별을 선택한 순간 상당수 국가들이 런던 소재 유럽 금융본부를 독일 프랑크프루트나 프랑스 파리 등지로 옮기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런던 지사 규모는 대대적으로 축소할 예정이다. 이미 JP모건과 HSBC는 이를 실행에 옮기려 한다.
영국인들은 이런 파장을 몰랐을까. 이제 와 '정치논리에 놀아난 선량한 시민' 코스프레를 하며 정치인들에게 "왜 우리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았느냐"고 따져 묻고만 있다.
리그레트(Regret)와 엑시트(Exit)의 합성어, 리그렉시트의 심리적 목표는 결국 '자기 위안'이다.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후회를 통해 자기합리화를 찾는다. 젊은 세대의 미래까지 순간의 감정으로 결정한, 무모함에 대한 충격을 그들은 지금 '후회'로 다독이려 한다.
"EU를 떠나기로 한 건 우리 실수다. 하지만 EU가 우리에게 이민자 협약을 강요하지만 않았어도, EU 내 정책 결정권한을 지나치게 독일에 집중시키지만 않았어도, 그리스 국가부도처럼 잘사는 우리에게 희생을 강요하지만 않았어도 우리는 EU와 결별하는 최악의 상황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국과 유럽, 전 세계가 불확실성에 빠져들고 혼란이 일어난 것은 EU, 네가 잘못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