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보호 암호화 필수" vs "TV 개발·유지보수 어려워" 방송업계 불법복제 방지·재투자 등 도움… 지상파 직접 수신율 30% 기대 가전업계 기술적 완성도 검토기간 필요… 국내용·해외용 별도 제작 부담
내년 2월 수도권 지역에 지상파 초고화질(UHD) 본방송이 시작됩니다. 4K UHD는 풀(Full) HD보다 4배 더 선명한 화질을 제공하는 서비스입니다. 그동안 IPTV, 케이블TV 등 유료방송에서만 생생하고 선명한 UHD 화질을 즐길 수 있었다면, 이제는 무료 보편적 서비스인 지상파 방송을 UHD로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KBS, MBC, SBS는 수도권에서 내년 2월부터, EBS는 같은 해 9월부터 UHD 본방송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후 같은 해 12월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광역시권과 평창, 강릉 일대로 확대한 후, 오는 2021년까지 순차적으로 전국에서 서비스하는 것이 정부의 로드맵입니다.
그런데 정작 방송업계는 시끄럽기만 합니다. UHD 본방송이 채 8개월밖에 남지 않았는데, 방송 기술표준을 정하는 것에서부터 쉽지 않습니다. 특히, 민간표준 채택을 둘러싸고 콘텐츠 보호기술 적용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시장을 뜨겁게 달궈왔습니다.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는 지난달 24일 지상파TV UHD 방송 표준으로 암호화 항목이 포함된 '지상파 UHD 송수신 정합' 기술을 채택했습니다. TTA는 방송과 통신에 관련된 여러 기업들이 모여 표준을 정하는 민간표준 단체입니다. 이번 표준은 그동안 국내 지상파 방송사가 시범 방송에 활용해온 유럽식 DVB-T2가 아닌, UHD방송 국제표준으로 유력한 미국식 ATSC 3.0 표준을 기반으로 했습니다.
문제는 이 표준에 포함된 콘텐츠 보호 기술입니다. 한마디로 '콘텐츠 암호화'를 의미합니다. 그동안 지상파는 양질의 UHD 콘텐츠를 무단 복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암호화를 요구해왔고, 이것이 이번 민간표준에 반영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지상파 UHD 콘텐츠에 수신제한시스템(CAS)을 적용해 암호화해 송출하게 되는 것입니다. CAS를 통한 방송신호 암호화는 그동안 유료방송에 적용해왔습니다.
지상파 UHD 콘텐츠를 암호화하게 되면, TV 단말기나 셋톱박스에 암호화를 해제하는 장치를 탑재해야 합니다. 가전사나 유료방송사 입장에서는 단가 상승의 요인이 되는 만큼 달가워 할리 없습니다. 유료방송 업계에서는 또, 지상파가 UHD 콘텐츠 암호화를 빌미로 지상파 재송신료(CPS) 인상을 요구할 것이라는 우려도 높았죠.
앞서 지난 5월 20일 열린 미래창조과학부의 ICT정책해우소에서도 이러한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당시 박영수 SBS 기술본부장은 "콘텐츠 제작사 보호와 재투자 활성화 등을 위해서는 콘텐츠 보호가 중요하다"며 "방송 시청에 문제가 없도록 하는 원칙 하에 콘텐츠 보호기술이 UHD방송 도입단계부터 적용될 수 있도록 가전사와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유준영 삼성전자 상무는 "정합에 따른 개발기간 소요로 UHD 본방송 시점을 맞춰 TV 생산에 어려움이 있고, 유지보수 문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난색을 표했습니다. 곽국연 LG전자 부사장 역시 "콘텐츠 보호기술 적용에 필요한 개발기간, 기술적 완성도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반대에 힘을 실었죠.
결국 논란 끝에 TTA 민간표준에 암호화 기술을 도입키로 결정됐습니다. 단, 유료방송에는 적용하지 않기로 했죠. 그러나 가전사 입장에서는 정작 미국 표준에는 암호화 기술이 포함돼있지 않다는 점에서 UHD TV 제조 시 해외용과 국내용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게 됐습니다.
지상파 UHD 방송을 둘러싼 논란은 암호화 뿐만이 아닙니다. 지상파 방송사가 UHD 본방송을 위한 재원 조달을 제대로 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 있습니다. 지상파 방송사는 UHD 본방송을 위해 총 6조7000억원의 재원이 필요하다는 계획을 정부에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몇년째 방송 광고매출 감소 등의 이유로 지상파 수익은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상황입니다. 당연히 지상파 UHD 방송이 차질없이 추진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달 29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송희경 새누리당 의원은 "UHD 방송을 위해 주파수를 공짜로 받아간 지상파가 실적은 계속 하락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UHD 방송을 위한 재정조달이 가능할지 의문이 든다"며 "지상파는 계속해서 수신료 인상이나 중간광고 등을 요구하며 소모적인 논란을 더 많이 일으키는 상황"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미 UHD TV를 산 소비자들을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번에 채택된 표준은 미국식 ATSC 3.0이지만, 그동안 가전사들이 시장에서 판매해온 UHD TV는 UHD 시험방송에 사용됐던 유럽식 DVB-T2 방식의 표준이 적용됐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별도의 컨버터 등을 장착해야 지상파 UHD 방송을 수신할 수 있습니다.
직접수신율을 높이는 것도 과제입니다. 지난해 말 기준 지상파 직접수신율은 5.3%에 불과한 상태입니다. 최성준 방통위원장은 국회 업무보고 당시 "ATSC 3,0 방식이 UHD 기술표준으로 채택되면 수신율이 30% 정도 높아진다"며 "2만원 내외 실내 안테나나 필름형 안테나를 붙이는 것만으로 수신이 가능하기 때문에 직접 수신율이 향상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미래부는 4일 국가기술표준을 정하기 위한 공청회를 열 계획입니다. 민간 표준인 TTA 표준에 이어 국가기술표준까지 정해지고 나면, 본격적으로 지상파 UHD 방송 준비에 들어가게 됩니다. 최 위원장은 "지상파 UHD 콘텐츠 암호화가 민간표준으로 채택됐지만 최종적인 표준은 미래부에서 다시 국가기술표준으로 정해야 하는 만큼, 그때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다시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