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양지윤 기자]국내 조선소들이 '수주절벽'에 가로막혀 일감이 줄어드는 사이 일본 조선소들이 세를 불리고 있다. 자국 기업의 발주와 엔저 지속에 따른 수출 경쟁력 향상을 등에 업은 결과다.
15일 조선해운 분석업체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단일 조선소 기준 수주잔량 세계 1위인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는 지난달 말 기준 111척, 747만8000CGT(가치환산톤수)의 수주잔량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4월에 비해 2.3% 감소한 수치다.
수주잔량 2위인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는 81척, 439만7000CGT로 일감이 전달보다 1.3% 줄었다. 4월에 이어 두 달째 3위인 현대중공업은 91척, 433만5000CGT로 전달보다 0.2% 감소했다.
국내 조선소들이 일감 확보에 애를 먹는 동안 일본 조선소들은 수주잔량 10위권에 두 곳이나 이름을 올렸다. 이마바리 SB조선소는 38척, 210만4000CGT로 전달에 이어 수주잔량 8위를 지켰고 오시마조선소는 103척, 178만3000CGT로 지난 4월에 비해 두 계단 순위가 오른 10위를 차지했다. 특히 이들 조선소는 수주가뭄이 지속하는 상황에서 수주잔량을 늘려 눈길을 끈다. 지난 1월에 비해 이마바리 SB조선소(35척, 179만9000CGT) 16.9%, 오시마조선소(89척, 152만9000CGT)는 16.6% 각각 증가했다. 같은 기간 국내 대형 조선소들의 수주잔량이 일제히 감소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국가간 수주잔량에서도 한국이 일본에 추월당할 위기다. 지난달 말 기준 한국의 수주 잔량은 2554만4583CGT로 일본(2227만9625CGT)과 차이는 326만4958CGT에 불과하다.
수주절벽 상황에서 한일 조선소의 희비가 엇갈리는 것은 무엇보다 대내 여건의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일본은 자국 기업들이 선박 발주에 나선 데다가 엔저 흐름이 지속하면서 수출 경쟁력까지 확보하고 있다. 내부에서 수주가뭄의 부담을 상쇄할 수 있는 여력을 갖췄다는 얘기다. 반면 국내 조선소들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전방산업인 해운사들이 경영난을 겪고 있어 수주난을 가중하고 있는 상태다.
일각에서는 일본의 약진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금 같은 조선업 불황기에는 선박 발주처들이 투자를 꺼리기 때문에 가격이 절대적인 우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특히 일본 조선소들은 1980년대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성품처럼 배를 만드는 '표준선'개념을 도입했다가 시장 주도권을 한국에 뺏겼다. 선박 건조 과정에서 선주의 요구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면서 선박 건조 경쟁력이 쇠퇴한 탓이다. 최근 일본 조선소들의 약진은 자국산을 선호하는 특유의 소비문화와 엔저의 영향 등 선박 이외의 요인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대형 조선소들은 구조조정을 신속하게 마무리해 경영 안정화를 꾀하고, 중형조선소들은 노동력 투입을 줄이는 대신 선박 유지보수 등 파생 서비스를 개발하는 방식으로 일본 조선소의 추격에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