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80년대 대학가에서는 '과대성장국가(overdeveloped state)'라는 용어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제2차 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들 중에 자본을 축적하고 분배하는 활동을 정부나 정치권이 주도권을 가지고 추진해 성장한 지칭하는 말이다.
물론 이런 나라들 대다수가 권위주의 정치체제를 가진 나라들로 여러 차례 정변을 겪으면서 도약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 이유는 초기 자본축적이나 경제성장에는 성공할 수 있었지만 정치·사회·문화 등 분화해나가는 사회 변화를 비대해진 국가조직이 감당하지 못해 붕괴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어쩌면 대한민국이 지구상에 유일하게 과대성장국가에서 탈피해 도약한 나라인지도 모른다.
지난 100년 동안 모든 사회의 핵심 동력이 '국가에서 기업으로 그리고 다시 개인으로' 이동해 왔다고 할 수도 있다. 요즘 유행하는 용어로 표현하자면 'B2G에서 B2B로 그리고 B2C로' 이전해 온 것이다. 물론 이런 흐름을 가속화시킨 것은 획기적인 사회분화를 가능하게 만든 디지털 네트워크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한국 사회의 여러 모습들은 보면 마치 이런 흐름을 역주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우리 사회 모든 영역이 국가 아니 정부의 직접 통제로 재흡수 되고 있는 느낌이다. 솔직히 아직도 잘 이해되지 않는 국가주도의 창조경제는 물론이고 프라임사업처럼 정부 지원받으려고 대학을 블록처럼 쌓고 부수기를 반복하는 교육정책도 그렇다. 뿐만 아니라 하루에도 무수히 열리고 있는 이벤트나 전시회들도 정부부처 혹은 공기관의 주관·협찬이 절대 빠지지 않는다. 마치 이벤트·전시산업이 우리 경제를 주도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창조와 다양성이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미디어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미디어 사업자들이 시장에서 승부를 걸기보다 정부의 규제나 지원에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이다. 최근 미디어 시장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사안들을 보면 한결같이 규제기관의 결정만 기다리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상파재송신 갈등도 그렇고 광고규제완화도 그렇다.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들도 정부의 배려 깊은 허락을 받기 위해 온갖 안간힘을 써야 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사업자들이 앞장서서 정치인을 끌어들여 정쟁거리로 만드는 경우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때문에 많은 미디어기업들이 시장이 아니라 세종시나 과천 그리고 여의도만 쳐다보고 이 있는 것 같다. 마치 사업자들 스스로가 '자발적 규제산업'이 되기를 갈망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다보니 정부나 규제기구의 위력이 막강해지는 '과대성장국가'로 회귀하고 있는 것처럼 보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사회 모든 영역에서 자율성은 실종되고 경쟁력이라는 게 나올 수 없음은 너무나 자명하다.
현실적으로 디지털 미디어시대를 선도하겠다던 정부의 목표는 몇 년 동안 초고화질 디스플레이 산업에만 머물러 있는 것 같고, 이 정부 초기 창조경제의 상징처럼 요란을 떨었던 한류 콘텐츠도 솔직히 한풀 꺾인 느낌이다. 미래 디지털 융합 시대를 보여준 알파고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거의 없는 것 같다. 한마디로 미디어 사업자들 스스로 새로운 먹거리를 찾고 개발하려는 창조적 노력이 나올 리 없다.
대신 정부나 정치권을 상대로 한 정책결정이나 규제에서 활로를 찾는 이른바 '대관(對官) 업무'가 사업자의 미래를 결정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니 정부나 규제기구의 힘은 점점 커지고 반대로 사업자의 자율성이 약화되는 전형적인 과대성장국가의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과도하게 성장한 국가조직은 다시 정상화하기가 쉽지 않고 그 시간이나 비용도 엄청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