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만 새우등 신세" 전전긍긍 미- 중 간 철강전쟁 이어 반도체까지 전면전 양상 중국수출비중 절반 이상 공조땐 국내업계 큰타격
[디지털타임스 박정일 기자] 미국 정부가 우리 정부와 업계에 '중국 반도체 굴기'에 공동 대응할 것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자칫 현재 진행 중인 미·중 간 철강전쟁처럼 반도체 산업에서도 국내 기업만 '새우등'이 터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분석이 나오고 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이달 중순 방한한 마커스 자도트 미 상무부 차관보는 우리 정부 측 인사를 비롯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인사를 만나 중국의 국가 주도 반도체 산업 지원에 대해 공조해달라는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자문이나 문의는 없었지만, 현재 우리나라 정부와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대한 대응책 마련을 꾸준히 논의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미국은 이미 중국산 저가 철강제품에 최고 400~500%대 관세 폭탄을 잇달아 부과하면서 전면전을 선언했고, 한국 제품도 최고 50%에 이르는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 상황이다. 여기에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방침을 시사하면서 무역 분쟁에 불이 붙었다.
여기에 미국이 반도체까지 반덤핑 공세로 맞설 경우 중국과 무역 전면전은 불가피하다. 업계에서는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집권할 경우 미국은 '전가의 보도'인 슈퍼 301조까지 부활시킬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미국은 이미 올해 초 WTO에 중국 반도체 펀드가 국가 보조금에 해당하는지를 확인해달라는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미국의 이 같은 대 중국 압박을 공식화할 경우 우리나라가 응해도, 응하지 않아도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업계는 우선 미국과 공동 대응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제어해 시장을 보호한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중국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업체의 피해는 크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에 의하면 지난 4월을 기준으로 전체 반도체 수출액의 절반 이상(63%)은 중국(홍콩 포함)이 차지했고, 미국은 5% 수준에 불과하다. 여기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모두 중국에 반도체 생산공장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하지만 미국이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치 등을 고려하면 중국 편을 들어주기도 어렵다. 주요 7개국(G7)이 중국의 철강 공급과잉 등에 공동 대응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점을 봐도 이 역시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이 때문에 '잘못하면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분쟁에 한국 업계만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미국과 중국 모두 반도체 전쟁에 돌입할 경우 우리나라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은 새 기회로 작용할 수 있는 분석도 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현재 메모리 반도체의 90% 이상을 외국에서 수입하는 중국 입장에서 세계 최대의 메모리 생산국인 한국과 통상 마찰을 겪으면 중국 역시 적잖은 피해를 본다"며 "같은 측면에서 미국 역시 한국은 꼭 필요한 동맹"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반도체는 철강보다 더 민감하고 중요한 산업인 만큼 중국의 시장 진출을 몇 년 늦추려고 국가 간 긴장상태까지 가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면서, 그보다는 중국으로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한미 협력을 강화하는 정도는 가능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