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과학자 찰스 다윈은 '진화론'을 통해, 주어진 환경에서 생존에 적합한 개체만이 경쟁에서 살아남는다는 학설을 정립한 바 있다. '진화'는 생물체뿐만 아니라 사회, 산업, 기술 등 삼라만상(森羅萬象)에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진화를 통해 생존하기 위해서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가 결정적인 요소이며,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국내 조선업계에 발생한 위기도 과거에 적절한 사업적 판단을 내리지 못한 것이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분석이 제기된 바 있다.
진화의 속도가 가장 빠른 영역 중 하나로는 ICT 산업을 들 수 있다. 그간 ICT 산업의 성장은 '네트워크'의 진화와 궤를 같이 해왔다. 30여 년 전 음성통화 제공만 가능했던 우리나라의 통신 네트워크 기술력은 1990년대에 들어서 2세대(2G) 네트워크의 표준 기술방식인 CDMA(Code Division Multiple Access)를 최초로 상용화하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후, 네트워크 기술은 모바일 데이터 중심의 3G 시대와 고속의 대용량 서비스를 제공하는 LTE 시대로 이어지며 눈부신 진화를 거듭해왔다. 최근 우리나라는 국가적 과제로 LTE보다 1000배 빠른 5G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그리 멀지 않은 시점에 상용화가 예상된다.
이처럼 그간 우리나라 ICT 산업은 정보통신망의 발 빠른 성장을 중심으로 글로벌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를 기반으로 콘텐츠와 스마트폰 등 연관 생태계가 조성되면서, ICT 산업은 일개 산업의 영역을 넘어 국가 경제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네트워크의 진화는 역설적으로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했던 시대의 종언을 예고하고 있다. 최근 ICT 생태계는 탄탄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다양한 콘텐츠와 서비스가 공급·소비되는 '플랫폼'으로 무게중심이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ICT 산업의 중심도 플랫폼 위주의 시대적 대세에 따라, 구글과 애플 등 글로벌 기업들은 플랫폼 경쟁력을 전면에 내세우며 영역 확장을 가속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가행정 플랫폼 시스템도 새로운 사회 패러다임의 변화를 통해 정부3.0을 도입해, 부처간의 칸막이를 없앤 융합을 통해 국민을 위한 편리한 서비스 제공과 새로운 생태계 조성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글로벌 경쟁력을 지닌 우리나라 방송통신산업의 모습도 더이상 네트워크 속도전 뿐만 아니라 새로운 '플랫폼 경쟁력'을 기반으로 발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변화를 통한 국가 경쟁력 강화와 생태계 조성을 위한 새로운 융합산업의 창출은 글로벌 경쟁력을 구축하기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 조건이 됐다.
최근 방송통신의 칸막이가 없는 변화에 발맞춘 융합을 이뤄내고 새로운 플랫폼 산업을 통한 생태계 조성을 시도하는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인수·합병이 세상에 알려진지 6개월이 경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적인 방향 정립이 되지 않은 우리의 현실은 ICT 산업의 빠른 패러다임의 변화를 정치공학적 시각에서 판단함으로 세계시장을 주도 할 시기를 놓치지 않을 까 걱정이 된다.
현재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이 세계 최고의 ICT 기업으로 우뚝 선 것은, '안드로이드'와 'iOS'등 플랫폼을 선제적으로 개발해 연관 생태계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한 번에 수 조원의 투자를 수반하는 반도체 산업도 불과 몇 개월의 기술력 격차에 따라 시장의 우열이 달라진다. 방송통신 융합 서비스로 진화한 플랫폼 영역의 경쟁 또한 시장 선점을 위한 시간과의 싸움으로 귀결됨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나라 ICT 기업들은 플랫폼 등 융합서비스 영역으로 진화해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고 시장에서 생존해야 한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더딘 정부정책 결정과 사업자간 낡은 이해관계가 산업 진화의 발걸음을 묶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인수·합병 심사를 조속히 마무리 짓고, 우리 ICT 기업들이 치열하게 플랫폼 경쟁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