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경제가 걷잡을 수 없는 침체국면으로 빠져들면서, 심각한 부실상태에 빠진 조선산업과 해운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2016년 1/4분기에 수출은 1.7% 감소하고, 설비투자는 5.9%, 민간소비도 0.3% 감소해 GDP는 0.4% 성장에 그쳤다. 이러한 거시경제적 침체에 더해서 천문학적인 부채와 손실을 기록하고 있는 조선산업과 해운산업의 구조조정과 그에 따른 실업사태에 대한 대응책을 고심하는 가운데, 드디어 한국판 양적완화가 정치권과 경제계의 화두로 등장했다.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정책이란, 지난 세기의 대공황에 버금가는 2008년 미국발 세계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선진국들이 금리가 0%에 다다를 정도로 최대한의 경기확장정책을 썼음에도 선진국경기가 침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하자, 선진국들이 마지막으로 꺼내든 최후의 정책수단이다. 양적 완화정책의 구체적 내용은, 중앙은행이 전통적인 통화관리방식인 시중은행들에 공급되는 자금에 대한 금리정책을 통한 간접적 통화관리방식을 버리고, 중앙은행이 새로 발권한 통화를 기반으로 직접 민간금융시장에서 장기국채 및 회사채, 주택저당증권(MBS)등을 매입해, 민간부분에 직접적인 통화공급을 확대하는 정책이다. 즉 제로금리상태에서 추가적인 금리인하를 통한 통화확대가 불가능하자, 기존의 통화관리방식을 뛰어넘어 민간부문에 하늘에서 돈을 뿌리는 정책과 흡사하다고, '헬리콥터 머니'정책이라고도 불린다. 즉 경기확장을 위해 정부와 중앙은행이 사용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인 셈이다.
한편 최근의 한국판 양적 완환 논의에 대하에 제기되는 우려 중의 하나는 현재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1.5%로 여전히 금리인하정책의 여지가 남아있는데도,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서 '헬리콥터 머니'를 찍어내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우려다. 또 다른 우려는 향후 진행될 양적 완화정책의 구체적 경로가 과연 한국경제의 활력을 높여줄 수 있는 최적의 정책인가 하는 문제다.
최근 한국경제의 침체국면은 단순한 경기순환적 불경기라기보다는, 한국산업의 경쟁력 상실이라는 구조적 요인이 주요원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경기불황은 향후 더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심각한 문제점이다. 이러한 구조적 심각성에 더해서 조선 및 해운산업에서 시작될 대규모 구조조정과 그에 따른 실업사태 등이 향후 우리경제 및 사회에 미칠 충격을 고려하면, 한국판 양적 완화와 같은 특단의 대책을 고려하는 것은 과잉반응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문제는, 한국판 양적 완화정책이 기존 선진국에서의 양적 완화정책들이 초래했던 부작용을 재연하지 않도록 정밀하게 설계돼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시행됐던 양적 완화정책은 심각한 금융경색과 경기위축을 완화하는 데에는 일정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이와 같은 긍정적 효과와 함께, 전대미문의 규모로 확대된 초저금리 유동성의 상당부분이 투기적 자산투자자금으로 활용돼, 부동산거품과 유가자산의 가격거품을 초래해, 결과적으로 빈부격차와 사회적 분열을 심화시킨 점이 지적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의 경우에서와 같이, 양적 완화정책이 민간부문의 소비 및 투자확대를 가능하게 하는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심리로 이어지지 못할 경우, 오히려 경제전반의 구조적 왜곡을 심화시킬 뿐이다.
따라서 향후 한국형 양적 완화정책에서 가장 유의할 점은 양적 완화정책을 통해 확대 공급되는 유동성이 투기자금으로 전락하지 않고, 한국산업의 경쟁력 상실이라는 구조적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정책자금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산업정책투자 형태의 재정정책이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즉 중국에 비해 절대열위구조에 빠져들고 있는 한국의 주력산업들의 기술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기술경쟁력 확보를 위한 획기적 R&D투자와 함께, 한국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가능하게 해주는 튼튼한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한 대규모 투자확대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양적 완화를 통해 늘어난 유동성이 투기자금으로 변질할 경우, 우리경제의 미래는 없다. 중앙은행의 발권력으로 확보된 유동성으로, 작동하는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한 투자가 이뤄질 경우,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함께 내수 진작을 통한 경기회복도 동시에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저소득층의 한계소비성향이 고소득층의 한계소비성향보다 훨씬 더 높아서, 고소득층의 소득증가는 투기적 자산투자로 이어지지만, 저소득층의 소득증가는 소비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