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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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은 앞으로 두 달 동안 인공지능(AI)에 대한 공개워크숍을 네 차례 개최하고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을 공론화할 예정이라고 지난 3일 밝혔다. 미국이 다가올 인공지능시대에 대비하려는 발 빠른 대응으로 보인다. 앞으로 AI 기술을 둘러싼 국가 간의 주도권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이 고도로 발달하면 청소로봇, 육아로봇은 물론이거니와 로봇교사, 로봇기자, 로봇판사에 이르기까지 로봇은 인간이 수행하던 대부분의 직업들을 대체하게 될 지도 모른다. 머지않아 힘들고 어려운 일, 위험한 일은 인공지능 로봇이 도맡아 하게 되는 편리하고 안전한 세상이 도래할 것이다. 과연 인공지능기술은 우리에게 멋진 신세계를 가져다 줄 것인가.

얼마 전 읽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생각났다. 1932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과학기술이 최고도로 발달해 사회의 모든 면을 계획적으로 관리하고 인간의 출생, 행복, 자유마저 통제하는 미래 문명세계를 희화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정말 오래된 소설인데도 이야기의 전개가 얼마나 기발하고 재미있던지 끝을 보기 전까지 손에서 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야기의 배경은 헨리 포드가 T형 자동차를 대량으로 생산한 해를 기원으로 삼은 시대의 미래 세계국, 서기로는 2540년경이다. 인간은 고도로 발달한 기계문명과 과학기술 덕분에 모든 재앙과 위험으로부터 벗어난다. 가난, 질병에서 완전 해방됐고, 죄나 고통 따위에 주눅 들지 않는 평온한 삶을 산다. 감정이 불안해지면 '소마'라는 약을 먹고 감정을 조절하며 행복한 마음을 유지한다. 하지만 인간은 출산이 아닌 인공 부화로 태어나고, 기계로 양육되며, 획일적 속성을 부여받는다. 불행, 고통, 위험으로부터 해방된 대신 인간은 부모, 고향, 자기 기원(origin)을 가질 수 없으며, 사사로운 감정, 편견, 고집, 주장, 사랑, 신앙 등은 모두 사라져 버린다. 야만국에서 우연히 이 문명권에 오게 된 존은 처음에는 '멋진 신세계'에 감동하지만, 곧바로 그것이 소수 통치자들에 의해 조작된 행복임을 간파하고 절망하게 되고 결국 자살을 선택한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이 '멋진 신세계'는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고 인간은 인간 자신을 잃어버린 디스토피아 세상이었던 것이다. 완벽하고 안전하고 편리한 세상인 것은 분명하지만 불쾌감을 안겨주는 것이 있으면 참는 법을 배우는 대신 모두 제거해버리는 그런 사회다. 이 소설을 통해 헉슬리가 던지고 싶었던 것은 아마 '어떤 것이 진정한 행복이며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이었을 것이다. 주인공 존은 세상의 지배자인 총통과의 대화에서 "저는 불편한 것을 좋아하고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한다"라고 당당히 대답한다. 나이 먹어 추해질 권리,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불안에 떨 권리, 표현할 수 없는 고민에 시달릴 권리까지 요구한다. 그게 바로 인간의 모습이다.

얼마 전 방한한 <사피엔스>의 저자,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인간이 신을 창조하면서 역사가 시작됐고 인공지능을 만들어 스스로 신이 되면서 현생인류의 역사는 종말을 맞게 될 거라는 섬뜩한 예견을 했다. 현생인류의 종말, 기계와 인간의 공존, 기계와 결합된 포스트 휴먼 등 SF소설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들이 성큼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기계문명의 급속한 발달로 인해 인류는 어느 순간 기계가 인간을 능가하는 시점인 '특이점'이 맞게 될 것이라 예측한다. 특이점이 오면 인간의 종말이 올 수도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후기 인상파의 거장 폴 고갱은 말년에 남태평양의 타히티섬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며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 역작을 남긴다. 이 작품의 제목은 아마 미술품 중 가장 철학적인 제목을 갖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이다. 메리 올리버라는 생태시인은 "이 우주에서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물이 주어지는데 그것은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라고 노래했다. 기계의 위협을 맞아 인간은 스스로를 성찰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지능과 과학기술의 위력 앞에서 인간이 인간의 삶과 본질을 생각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인공지능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인간을 더 사랑해야 하며, '우리는 누구인가', '행복, 사랑이란 무엇인가' 등 정답 없는 질문을 더 진지하게 던져야 할 것이다. 인간이 없다면 인공지능도, 과학기술도 있을 수 없다. 아무리 편리하고 안전한 세상이 오더라도 인간이 소외되고 잊혀진다면 그 '멋진 신세계'는 결코 멋지지도, 인간적이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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