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수준이 향상되면서 사용량이 부쩍 늘어난 생활용품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뒤늦게 밝혀지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의 추악한 진실에 놀란 탓이다. 살생물제(biocide)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어설픈 발표도 소비자를 안심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유해물질이라고 무작정 무서워하기보다 건강한 상식이 필요한 때다.
방향제·탈취제·섬유유연제·다림질보조제·물티슈 등의 생활용품에 세균·곰팡이에 의한 부패나 공기 중의 산소에 의한 변질을 막아주는 '보존제'(preservative)가 들어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끔찍한 가습기 살균제를 떠올릴 필요는 없다. 보존제는 제품의 살균·소독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통·소비 과정에서 제품의 부패와 변질을 막아주는 것이다. 인체 독성이 충분히 약한 성분을 사용하고, 사용량도 최소화한다.
그렇다고 안전성이 완벽하게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화학물질에 유난히 민감한 소비자들에게 독성이 나타나기도 한다. 몸에 좋지도 않고, 공짜도 아닌 보존제를 굳이 사용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유통·사용 중 썩거나 변질된 제품을 사용하는 '위험'보다 보존제를 써서 얻는 '편익'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전분(녹말)을 물에 녹인 다림질보조제처럼 수분이 많은 제품의 경우가 그렇다. 수분이 포함된 제품이 공기 중에 노출되면 반드시 세균이나 곰팡이가 자라고, 공기 중의 산소에 의해 변질된다. 상당한 기간이 지나도 부패·변질이 되지 않는 제품에는 반드시 보존제가 들어있다.
생활용품 보존제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일차적 책임은 기업에 있다. 물론 정부도 보존제 허용량을 정하고, 생산과 유통을 관리한다. 보존제의 안전성에 대한 관심은 대부분 피부 독성에 한정된다. 그런데 생활용품을 호흡으로 마시는 방법으로 사용할 때는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조직이 약한 호흡기나 눈에는 보존제가 물리적 상처나 염증을 일으키기도 하고, 혈액으로 흡수돼 다른 장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눈이나 호흡기에 안전한 보존제는 없다. 누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기본상식이다.
물론 한두 번의 가벼운 노출로 심각하고 치명적인 질병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존제가 포함된 생활용품을 밀폐된 실내에서 장시간 사용하는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스프레이형 생활용품에 들어있는 추진제도 호흡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방향제와 탈취제는 어쩔 수 없는 경우 제한적으로 사용하도록 개발된 제품이다. 실내에서 나쁜 냄새의 원인을 제거하는 노력이 훨씬 중요하다.
보존제를 전혀 넣지 않은 제품도 있다. 밀폐된 포장에 일회용으로 포장된 물티슈와 인공눈물이 그렇다. 물론 특수 포장에 따른 비용은 소비자가 부담해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일회용 제품은 개봉 후 오염되지 않도록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보존제라고 모두 화학적으로 만들어진 낯선 독약은 아니다. 에탄올(술)·구연산(레몬산)·아스코르브산(비타민C)·안식향산(벤조산) 같은 훌륭한 천연 보존제도 있다. 물론 PHMG·CMIT·파라벤처럼 낯선 보존제도 있다. 모든 보존제를 '유해물질'이라고 호들갑을 떨 이유는 없다. 많은 사람이 즐기는 레몬의 신맛을 내는 구연산을 '시트릭애시드'(citric acid)라는 맹독성 유해물질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생활용품 포장에 보존제의 낯선 이름을 잔뜩 적어놓았다고 안전성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화학물질의 독성은 사용방법과 농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모든 보존제는 농도가 진하면 피부·눈·호흡기에 강한 독성을 나타낸다. 생활용품의 정체·효능·한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시간이 지나도 썩거나 변질되지 않는 생활용품은 장기간 호흡으로 흡입하거나 눈에 닿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상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