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압 병상·역학조사관 확대 '진행 중'…긴급상황센터 24시간 감시 지카 환자 첫 병원에서 발견 못 하고 메르스 의심환자 거리 활보 '구멍' 방역 당국 '레드팀' 도입해 단점 보완…"촘촘한 방역망 갖추는 과정"
한국보도사진상 general news 우수상 '더위 참으며 사투'(서울=연합뉴스) 제52회 한국보도사진전 general news 우수상으로 선정된 연합뉴스 이재림 기자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방역 관련 의료진의 모습을 촬영한 '더위 참으며 사투'. 2016.2.21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는 우리 방역체계의 무능을 그대로 드러냈고 그만큼 '포스트 메르스' 대책은 절실했다.
정부는 후속대책으로 질병관리본부의 위상을 강화하고 콘트롤타워 역할을 담당하도록 조직을 개편했으며 지방에서도 감염병의 검사가 가능하도록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체계를 강화했다.
역학조사관의 수를 크게 늘리도록 법을 개정했고 음압 격리병상 같은 인프라를 확대했다. 신고 체계에서는 환자와 의료기관의 책임을 강화하고 메르스의 숙주가 됐던 '응급실'의 시설·관리 기준에 대해서도 고삐를 죄었다.
하지만 지난 1년간의 노력에도 최근 지카 바이러스 환자나 메르스 의심환자에 대처하는 과정에서는 적지 않은 '구멍'이 발견됐다.
국내 첫 지카 바이러스 감염자는 첫번째 방문 병원에서 걸러지지 않았고, 메르스 의심환자는 통제를 벗어나 거리를 활보했다.
◇ 콘트롤타워 된 질병관리본부…방역관·역학조사관 권한 강화
보고는 많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던 방역망의 지휘통제 체계는 질병관리본부 중심으로 정비됐다.
메르스 사태 당시 콘트롤타워가 질병관리본부→복지부→총리실 등으로 수시로 바뀌며 혼선을 빚었지만, 개편 이후 질병관리본부가 모든 위기경보 단계에서 '방역대책본부' 역할을 하며 방역 책임을 진다.
실장급이던 질병관리본부장이 차관급으로 격상되며 인사권과 예산권의 상당 부분이 복지부에서 떨어져 나왔다.
국장급 고위공무원이 감염병에 대한 24시간 모니터링, 감염병 정보에 대한 실시간 수집과 분석, 대규모 실전 훈련, 긴급대응팀 파견, 백신이나 격리병상 등 자원 비축 등의 업무를 책임지는 긴급상황센터(EOC)도 설치됐다.
메르스 사태 당시 질병관리본부, 지자체, 민간 병원 사이의 연계가 체계적이지 못해 검사가 늦어졌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주요 감염병의 검사를 질병관리본부 산하의 국립보건원뿐 아니라 시도 지자체의 보건환경연구원도 맡도록 개편됐다.
환자 발생 신고와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통제까지를 아우르는 방역망 전반에 대한 수술도 단행됐다.
시도지사가 임명하는 방역관에 통행 제한, 주민 대피, 감염병 매개 음식물 폐기, 감염병 관리인력 동원 같은 권한이 부여됐으며 역학조사관에게는 위험장소 폐쇄와 일시적인 통행차단 같은 권한을 줘서 현장 지휘에서 힘을 갖도록 했다.
감염병 환자에게는 역학조사를 거부하거나 방해할 경우 거액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해 신고와 협조 의무를 강화했다. 역학조사를 거부, 방해하거나 고의로 사실을 누락, 은폐하는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된다.
◇ 음압 격리병상 확대 '진행 중'…역학조사관은 지원자 적어 '골머리'
감염병 환자의 치료를 위한 음압 격리병상의 확대는 아직 진행 중이다. 정부는 2020년까지 전체 의료기관에서 1천500명을 수용할 수 있도록 음압 격리병상을 갖추고 국가가 통제하는 국가지정 격리 병상의 수용 가능 인원을 메르스 사태 당시의 71명에서 2배 이상 많은 188명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시설을 늘리고 있다.
정부는 감염병 전문병원을 설립 혹은 지정할 계획도 내놨지만, 아직 결실을 보지는 못했다. 일단 국립중앙의료원을 중앙 감염병 병원으로 정하고 3~5개의 권역별 감염병 전문병원을 만들도록 하겠다는 틀만 정했다.
메르스 사태 당시 정규직 2명을 비롯해 역학조사관이 34명에 불과했다는 점을 지적받은 뒤 정규직 역학조사관을 89명으로 늘리기로 했지만, 이 역시 현재 진행형이다.
질병관리본부 차원에서 역학조사관을 늘리는 중이지만 4차례의 공채에도 지원자 부족으로 아직 충원하지 못해 진용을 갖추지 못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일부 직원의 업무를 역학조사관으로 변경해 운용하고 있으며 역학조사관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훈련하고 있다.
각 시도에 배치되는 역학조사관 역시 채용 상황에서 편차가 크다. 채용을 마친 곳도 있지만, 여전히 채용 중이거나 채용을 계획하는 곳도 적지 않다.
작년말 관련법 개정 이후 17개 시도는 2명 이상의 역학조사관을 채용해야 한다. 서울시의 경우 최소 인원보다 2명 많은 4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병원 과밀화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간호 인력이 간병까지 책임지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의 도입 속도를 높이기로 했지만, 간호사들의 반발과 인력 부족 등으로 추진력을 얻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복지부는 112곳에서 시행 중인 이 서비스를 서울지역 상급종합병원 등을 포함해 올해 말까지 400곳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 방역망 촘촘해졌다지만…지카 환자·메르스 방역 구멍 '송송'
방역체계에 대한 수술이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최근 메르스 의심환자와 지카 바이러스 환자 발견 과정에서 크고 작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지난 3월 발생한 지카 바이러스의 첫 한국인 환자는 신고 지침상의 증상이 애매한 탓에 환자가 처음 병원을 찾을 당시 걸러지지 못했으며 해당 병원의 시스템 문제로 위험지역 여행 이력 안내 시스템도 가동되지 않았다.
여행 이력 안내 시스템은 지난달 2번째 환자 발생 당시에도 제 역할을 못 했다. 이 환자가 방문한 필리핀이 '산발적 발생국가'라는 이유로 적용 국가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지난달에는 중동에서 온 메르스 의심환자가 병원에서 벗어나 8시간 동안 당국의 통제를 벗어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UAE 국적의 여성 M(22)씨는 발열과 함께 기침, 인후통 등 호흡기 증상을 호소해 '메르스 의심환자'가 됐지만 M씨는 일행과 함께 임의로 숙소로 돌아가 버렸고, 격리 조치 때까지는 8시간 가까이 걸렸다. 다행히 M씨가 음성 판정을 받아 메르스에 걸리지 않은 것으로 확정됐지만, 자칫 초기 격리 조치가 되지 않아 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던 작년의 메르스 사태가 반복될 수 있었던 아찔한 상황이었다.
◇ 방역 당국, 문제점 신속히 수정…레드팀 도입해 단점 보완
여전히 방역망에 크고 작은 '구멍'이 발생하고 있긴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방역 당국이 발생한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수정에 나서고 있다는 데 있다.
방역 당국은 위험지역 여행 이력 안내 시스템을 개선해 전국의 병원을 상대로 시스템 점검 작업을 벌이고 있으며 필리핀과 베트남을 뒤늦게 대상 국가에 넣었다. 지난 7일 나온 4번째 지카 바이러스 환자의 경우 시스템을 개선한 덕에 베트남 방문 이력을 의료기관이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지카 바이러스에 대한 의료기관의 신고 지침도 구체화해 시스템이 더 명확하게 돌아가도록 조치했다.
메르스 의심환자 M씨가 병원에서 벗어날 당시 안전관리원 1명이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던 만큼, 방역 당국은 관련 규정의 개선도 추진 중이다.
메르스 의심 사례 발생 때 안전요원이 2인 1조로 활동하게 하고 안전요원이 의심환자에게서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내용을 관련 지침에 반영하거나 병원의 내부 규정에 넣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질병관리본부는 감염병 발생 상황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예측하고 방역망에 문제점은 없는지 살펴보기 위해 '레드팀' 개념을 도입하기도 했다. 군사용어인 레드팀은 본래 팀인 '블루팀(Blue Team)'의 계획을 무산시키거나 공격하는 팀을 뜻한다. 기존 체계에 문제가 없는지 '아군'을 공격해서 보완점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언론 등에서 제기하는 방역체계의 문제점을 신속하게 수정, 보완하고 있다"며 "단점을 보완해 더 촘촘한 방역망을 갖추는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