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혈세 투입 악순환 반복
구조조정 자본력 확충 시급

급물살 타는 기업 구조조정

국책은행의 금융지원 중 12%가 한계 대기업으로 투입된다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최근 조선과 해운업종에 대한 기업구조조정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또다시 국민의 혈세가 부실기업에 들어간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기업 이익을 가져가는 대주주의 도덕적 해이를 엄벌하고 기업이 어려워지면 혈세를 투입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 국책은행의 부실기업 지원 확대= 25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부실 대기업 구조조정에 국책은행이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대기업에 대한 국책은행의 금융지원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산업은행(이하 산은)과 수출입은행(이하 수은)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취약업종에 대한 대출을 늘리면서 기업대출 규모가 2008년 34조원에서 지난해 82조원으로 2.5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 가운데 대기업 비중은 2005년 26.9% 수준에서 2014년에는 역대 최고치인 47.5%를 기록했다. 대우조선해양, STX조선해양, 현대상선 등을 비롯한 조선·해운 등 한계 대기업에 대한 대출 비중도 함께 급증했다. 2009년 1.9%에 불과했던 한계 대기업 비중은 2010년 4.6%, 2012년 7.8%, 2014년 12.4%까지 올랐다. 조선업계와 해운업계의 지난해 기준 당기 순손실은 6조원이 넘고 부채도 80조원에 육박한다. 이미 2000년에 대우조선해양은 2조9000억원의 공적자금을 받아 위기에서 빠져나왔지만, 경영환경을 개선하지 못해 지난해에 4조원의 자금이 추가로 투입됐다. STX조선해양의 경우 2008년부터 6년간 산은으로부터 4조원을 대출받고, 추가로 4조원의 지원이 결정됐다.

◇ 한계기업 구조조정… 국책은행 자본력 확충이 과제= 이런 한계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작업이 가속화되면서 국책은행의 자본력 확충은 선결과제다. 부실대출을 국책은행이 떠안으려면 '실탄'이 있어야 하는데, 여의치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산은의 자기자본비율은 14.28%로 비교적 높지만, 조선·해운·철강 등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빌려준 자금 규모가 큰 편이다. 올해 정부로부터 받은 예산도 600억원에 불과하다. 수은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지난해 말 10.11%로 금융감독원의 기준(10%)에 아슬아슬하게 맞췄다. 시중은행 평균치(14.85%)보다는 크게 떨어진다. 수은은 조선·해양 기업에 13조원에 육박하는 대출과 보증을 해줬다. 이 영향으로 수은의 지난해 대손충당금은 1조658억원으로 전년보다 63.4%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업 구조조정이 제대로 진행되려면 정부가 예산 사용하거나 한국은행(이하 한은)이 발권력을 동원해 국책은행 증자에 참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획재정부는 산은과 수은 등 정책금융 기관의 자본금을 늘려 기업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을 감당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융업계에서는 정부가 예산을 이용해 현금출자를 하는 것보다 한은이 발권력으로 증자하는 방식을 추진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한은이 발권력을 동원해 국책은행 증자에 참여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는 있지만, 구조조정의 묘수는 아니다"고 말했다.

정부는 수은의 자기자본을 확충하기 위해 산은을 통해 5000억원 규모의 한국주택공사(LH) 지분을 추가로 출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은은 2008년 이후 기재부 출자액 1조1300억원을 포함해 총 5조1800억원의 현물출자를 받았다. 따라서 산은이 5000억원을 투입한다는 것은 그만큼 국민들이 낸 세금을 쓴다는 뜻으로 혈세 투입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부분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21일 "(한계기업의) 부실을 처리하고 구조조정을 하려면 금융기관의 자본 확충이 필요하다"며 "여러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기업 이익은 대주주가, 부실은 국민혈세로= 현금출자로 혈세가 투입되면 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부담은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기업이 이익이 날 때는 대주주의 배만 불리고, 기업이 어려워지면 국민들이 세금과 실업부담을 모두 져야 하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한진해운 대주주가 경영권을 포기하기 전에 전직 회장 가족들이 지분을 전량 매각해 도덕성 해이 논란이 일고 있다.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은 주요 주주였던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 일가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한진해운 주식을 매각하고 손실을 회피했는지 조사하기로 했다.

정부는 26일 오전 기재부 금융위원회 등으로 구성된 '산업·기업 구조조정협의체' 회의를 열고 취약업종 추가 지정을 논의한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날 회의 직후 종합 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남창우 KDI 연구위원은 "조선업의 경우 국책은행이 주주이자 주채권은행이기 때문에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며 "자산 매각이나 매물로 내놓는 일 등도 함께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영진기자 artjuck@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