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계현 우진 부회장
류계현 우진 부회장


최근 몇 년간 산업계 R&D 분야의 규제개선을 위해 정부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공무원이 기업 현장을 방문하거나 기업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간담회를 개최하는 것도 심심찮게 목격된다. 미래창조과학부의 경우, 과학기술분야의 '창조경제 규제개선 추진위원회'와 '정보통신 활성화 추진 실무위원회(ICT 분야)' 등 기술규제 컨트롤 타워를 설치하며 전방위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결과 기업인 입장에서 봐도,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규제 개선성과를 거둔 것 같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일선 기업에서 느끼는 규제개선 체감도는 정부의 노력에 비해 그리 높지 않다. 한 예로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지난 1월에 실시한 'R&D분야 규제개선에 대한 만족도' 조사에서 '규제 개선이 잘 되고 있다'고 응답한 기업은 전체의 27.2%에 그쳤다. 이런 온도차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첫째, 기업의 눈높이는 낮고 현실적이다. 기업의 애로는 지엽적이거나 작은 것들이 많다. 당장 기술개발을 하거나 신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현안 해결을 원한다. 반면에 정부는 산업계 전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제도 정비에 초점을 맞춘다.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중요한 문제가 건의 과정에서 사라져버린다. "건의해도 소용없다"는 기업인의 하소연은 이런 경우에서 비롯된다.

둘째, 기업은 직접 말하지 않으면 듣지 못한다. 얼마 전 규제개선과 관련해서 정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미 애로요인의 상당수가 개선됐다는 것을 알고 적지 않게 놀랬었다. 규제개선에 대해서 기업들은 어떠한 정보도 얻지 못하고 규제 아닌 규제 속에 메여 있었던 것이다. 사실 늘 인력부족에 시달리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정보수집도 쉽지 않은 일이다.

셋째, 기업은 쉽게 입을 열지 않는다. 기업은 애로요인이 있어도 이를 체계적으로 건의하는데 매우 소극적이다.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모르고 지나가거나, 업무가 바쁘다 보니 불편을 감수하는 경우도 많다. 건의를 위해 행정서류를 작성하는 자체를 규제로 느낀다.

결국 규제개선을 두고 생기는 정부와 기업 간의 간극은 얼마나 수요자 입장에서 접근했느냐에 달렸다. 기업의 눈높이에 맞추고, 기업이 듣기 쉽게 설명하고, 기업이 쉽게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에게 기업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입맛에 맞는 대안을 만들어내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이런 소통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기업이 직접 나서는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를 통해 'R&D규제개선분과위원회'를 구성한 이유다. R&D규제개선분과위원회는 기업의 R&D 활동을 책임지는 대표나 연구소장 등 최고 임원으로 구성됐다. 누구보다 기업의 R&D 현장을 잘 아는 사람들이 모여, 기업 연구소에서 발생하는 애로요인과 불합리한 규제를 발굴하고, 기업에 미치는 영향과 개선방안을 기업 입장에서 검토하고 있다. 지난 한해 발굴활동을 통해 10개 과제를 발굴해서 정부에 건의했다. 과제협약 지연에 따른 불편, 소액연구비 집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 등 사소하지만 기업만이 느끼는 어려움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또한 국내에 유사한 인증제도가 있는데도, 해외규격인증을 획득하기 위해 수천만원의 비용을 부담한다는 애로도 있었다.

위원회는 이번에 건의된 내용들이 정책에 반영되도록 계속 정부와 대화를 하고, 기업에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해나갈 예정이다. 스스로 기업의 눈과 귀와 입이 된다는 각오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했다. 규제 개선을 통해 R&D활동을 활성화하는 노력은 정부만의 책임도 아니고, 기업만의 몫도 아니다. 양측에서 함께 노력할 때, 그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류계현 우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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