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함 전 연세대 교수·정치학
양승함 전 연세대 교수·정치학

오늘은 20대 국회의원 총선거의 날이다. 국민의 주권을 행사하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투표장으로 가는 유권자들의 발걸음은 그리 가볍지 않을 것 같다. 전례없이 엽기적이기까지도 했던 공천파동을 겪어서 이기도 하겠지만 헌정 사상 최악의 식물국회라는 19대 국회로 인해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감이 그 절정에 다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19대 국회를 보면 20대 국회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저절로 사라진다. 우선 19대 국회는 법안 처리율이 43.3%로 18대 (53.5%)와 17대 (56.8%)와 비교해서 10% 포인트 이상 낮았고 법안 당 처리기간도 평균 517일로 역대 국회 중 가장 길었다. 특히 쟁점 법안을 둘러싼 여야간의 패키지 딜 협상 전략 때문에 쟁점이 없는 민생법안까지 처리가 지연되거나 법안 폐기 시한을 넘기기도 했다. 결국 무노동 무임금 원칙과 세비삭감, 국민소환제 도입, 정당 국고보조금 삭감 등 개혁안들이 나왔으나 의원들의 무관심으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19대 국회의 무책임성의 주요 원인으로 2012년 18대 국회 말기에 통과된 국회선진화법을 들곤한다. 과거의 날치기 통과와 폭력국회 관행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회선진화법이 종국에는 국회를 무기력한 입법기관으로 전락시키고만 악법으로 둔갑해 버린 것이다.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하려는 노력들이 전개되고 있지만 이것도 소기의 개혁목적을 이룰 수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잘못하면 다시 폭력 국회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또 다른 절름발이 국회를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대 국회의 개혁 성공 여부는 오늘 투표 결과와 직결돼 있다. 새누리당은 국회법 개정을 위해 재적의 5분의 3인 180석을 희망하기도 했지만 그동안의 여당 행태를 보면 과도하고 과분한 요구였음이 분명하다. 여당의 공천을 파멸로 몰고온 소위 '진박 마케팅'은 시대착오적 전근대적 신민적 정치문화의 소산이다. 민주화 30여년의 여정이 부끄러운 민주주의 퇴화 현상이다. 이들이 국회개혁을 한다면 국회는 다시 폭력국회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국민들은 여당이 '일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한 개혁의 동력을 유지할 정도의 의석수를 선출할 가능성이 높다.

20대 총선 결과는 이른바 3당체제를 이루게 될 전망이며 제3당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제3당이 원내교섭단체 (20석)를 구성하게 되면 19대 국회에서 꽉 막힌 여야간의 대결구도를 타파할 수 있는 균형자 역할을 하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국회법 개정 등을 19대 국회 임기내에 추진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3당 체제가 반드시 그와 같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아직 이르다. 3당체제가 상호 관용과 협력체제를 형성하지 않는 한 국회 개혁은 요원하다.

20대 국회에서도 여야간의 만성적인 적대적 대결구도가 형성이 된다면 그 어떠한 제도 개혁도 성공적일 수 없다. 19대 국회가 무능 국회로 전락한 것은 대통령의 불통도 한 몫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야당과의 소통은 물론 여당내 인사들과의 소통에 있어서도 전혀 관용의 여지를 두지 않았음이 여러 경우에서 확인되고 있다. 지난 8일 청주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한 대통령은 "20대 국회 확 변모돼야" 라고 발언했는데 국회 변모를 위해서는 대통령이 행정부 우월의식을 갖기 보다 국회와 동반자적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오늘 유권자들은 20대 국회의원을 선출하면서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할 것이다. 이상적인 후보와 정당이 없다고 투표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최선이 없으면 차선이라도 해야하며 그래야 최악의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민주사회에서의 최선의 후보란 자신과 다른 의견이나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을 포용하고 관용할 줄 아는 후보이다. 선거가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민주주의를 확립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필요조건이다.

양승함 전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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